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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가의 딸이어서 동정을 못 받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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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패티·허스트」양 사건의 재판이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던 것은 「허스트」의 납치사건 자체가 극적인 것이었다는 사실 외에도 「허스트」가문의 사회적 영향력과 담당변호사「리·베일리」의 자자한 명성이 볼만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문세도가의 영향력이나 초중량급 변호사의 변론에도 불구하고 배심원들이 「허스트」양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을 때 많은 미국 사람들이 어리둥절했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미국의 여론은 일단 재판이 공정했다고 받아들이면서도 뒷맛이 개운치 않다는 눈치다. 「카터」판사가 12일「허스트」에게 35년의 형량을 가선고하고 앞으로 석 달 동안 「허스트」로 하여금 정신과의사의 진단을 받게 하여 그것을 가지고 형량을 줄이기로 결정한 것도 공정한 재판의 어느 한구석에 헛점이 있었음을 참작한 것으로 보인다.
「허스트」에게 유죄판결이 나니까 「브라우닝」검사와 「베일리」변호사의 대결을 관전하는데 정신이 팔렸던 미국의 여론이 가벼운 동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들은 올해 22세의 이 가련한 처녀는 납치사건의 피해자인 동시에 재판과정에서는 「허스트」가문의 사회적 지위의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만약 「허스트」가 이름 없는 집안의 딸이었다면 미국사회 전체의 동정적인 여론으로 사건은 무죄로 끝났을 것이라고까지 논리를 비약시킨다.
원래 배심원들은 그들이 담당하는 사건에 관한 신문·방송보도조차 읽거나 듣지 못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허스트」사건의 배심원들은 모두가 「샌프란시스코」의 시민들이다. 그들이 「허스트」가문의 실력을 모를 수가 없다. 그들은 처음부터 「허스트」가문의 변론공세에 과잉방어를 했을 가능성이 있었다고 지적된다.
그럴 가능성에 대비하여 「베일리」변호사는 재판이 열리기에 앞서 배심원 후보명단을 놓고 그 사람들의 평소의 언동을 조사하여 그것을 「컴퓨터」에 집어넣어 가지고는「허스트」의 파란 많은 운명에 동정할 만한 사람들을 골랐다.
가급적 「허스트」같은 또래의 딸을 가진 사람들을 고르고 법과 질서에 철저한 고집불통의 보수적인 사람이나 억만장자에게 적개심을 가질만한 사람들은 제외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러한 배려도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브라우닝」검사가 안도의 숨을 쉬면서 말했듯이 『「캘리포니아」주는 「매서추세츠」주가 아니었다.』
「브라우닝」검사는 「허스트」사건이 만약 「매서추세츠」주 같은 「진보적인 고장에서 일어났으면 자기에게 당초부터 승산이 없었다고 실토했다. 「허스트」의 재판에는 도시「게릴라」의 적개심을 가진 배심원들의 보수적인「이데올로기」와 초중량급 변호사를 고용한 권문세도가의 공세를 예상한 배심원들의 과잉방어가 작용했을 가능성을 이와 같이 담당검사 자신이 직접 암시한 것이다.
「허스트」는 내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절도·폭행·납치 등 11개 죄목에 대한 또 다른 재판을 받는다. 「허스트」가족들은「샌프란시스코」의 유죄판결이 「로스앤젤레스」의 판결에 영향을 줄 것을 두려워한다는 보도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도 「매서추세츠」가 아닌 것을 그들은 걱정하고 있다. 【워싱턴=김영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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