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러헌 영국수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서니·짐」「빅·짐」-. 영국사람들은「제임즈·캘러헌」외상을 이렇게도 불러왔다.
「서니」는 햇볕을 한 몸에 받아 밝고 명랑한 인상을 주는 별명 같지만 그 속엔 가시가 돋쳐 있다. 노동당의 좌파도, 우파도 아닌 그의 중도적인 입장은 오히려 무골호인이라는 평을 낳고 있는 것이다. 「빅·짐」은 그의 훤칠한 키를 두고 하는 말이다.
「캘러헌」이 수상자리에 오르자 제일 먼저 화제가 된 것은 그의 천학. 동양사회에선 그런 것이 오히려 입지전의 인물로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영국처럼 틀과 법도를 존중하는 나라에선 마치 이단으로 생각되는 모양이다.
「캘러헌」은「옥스퍼드」대학 따위는 엄두도 못 내고 고작 중학만을 마쳤다.
그렇다고 명문가의 후손도 아니다. 그의 아버지는 해군하사관이었다. 집안마저도 보잘것없는 하류다.
『그러니까 노동자들의 정당에 들었지!』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수상만은 아무리 노동당출신이라 지만「옥스퍼드」출신이 압도적이었다. 전임자「윌슨」이 그랬고 그의 각료들도 대부분이 예외가 아니었다. 무론 전후의 노동당수뇌들도 거의 전부가 그랬다.
그런 가운데서도「캘러헌」은 장상·내상·외상을 역임하고 끝내 는 당수이자 수상이 되었다. 우선 그는 웅변에 능하다. 정치를 혀 하나로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세상이 어두울수록 정치인의 달변이나 웅변은 빛이 나기 마련이다. 해박한 상식은 그런 구변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영국이 경제적으로 한창 어려운 고비에 있을 때, 「캘러헌」은「옥스퍼드」대학의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는 일화도 있다. 그 무렵 장상이던「컬러헌」은 스스로 체면도 아랑곳없이 특별연구소에 지원한 것이다.
「캘러헌」의 또 다른 자질로는「조정능력」을 꼽고있다. 이상하게도 그가 요직에 있을 때는 큰 일들이 자주 벌어졌다. 내상에 있을 땐「에이레」사태가 일어났다. 그는 조용히 이 종교전쟁을 수습해놓았다.
결국 이런 경력들은 천학의 정치인을 일약 영국수상자리에 올려놓았다. 「옥스퍼드」보다는 인물을 더 높이 본 것이다.
그러나 정작 흥미 있는 것은「정치적인 공백」이 마치 조용한 휴일처럼 지나간 사실이다. 20일 가까이 수상선출을 위한 선거가 세 차례나 있었지만「정치적 위기」의 빛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시민도, 정치인들 자신도, 반대당도 다만 결과만을 지켜보며 있었을 뿐이었다. 과연 영국식 민주주의의 미덕이랄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