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공직생활 청산할 때 왔다"|영 윌슨 수상의 전격사임 안팎"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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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런던=박중희 특파원】「가장 잘 지켜진 비밀」로 불리어진 「윌슨」영국수상의 사임 계획은 앞으로 이 나라 역사상 「가장 뜻밖의 일」의 하나로 남을 것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이다. 「윌슨」수상을 둘러싼 영국정계의 그동안의 동향가운데 그의 사임동기를 어렴풋이나마 비치거나 그럴듯하게 설명할 수 있는 요소란 너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윌슨」영도하의 노동당정부는 그가 처음으로 집권한 64년 이래 가장 강력한 바탕 위에 안정돼 있었을 뿐 아니라 그가 노동당원내외에서 차지해 온 영수로서의 권위는 누구도 감히 도전할 수 없을만한 것이었다.
원내 제1야당인 보수당과의 의석 차 40에다가 강력한 노조를 순화하는데 성공한 「윌슨」과 그의 내각은 다음 총선까지 적어도 앞으로 2년 동안 충분히 자신을 지탱하고 남을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윌슨」은 바로 지난주 공공지출 재정의 긴축화 문제와 관련, 그의 정부에 대한 신임을 확인하는 원내투표에서 당내 좌파와 야당의 반발로 어렵게 이룰 통과시켜 이번 사임의 심리적 계기를 가져왔다는 설도 있다.
그는 「인플레」실업문제 등을 수습하는 적극적인 시정 과정에서 당과 노조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 수상으로서의 계속적인 재임은 당이나 그의 정책의 성공적인 수행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져 오기도 했었다.
그리고 지난주 60세의 생일을 맞은 「윌슨」은 수상으로서는 아직도 젊은 축인데다가 그의 건강 또한 완벽하다는게 공인된 사실이고 보면 그의 돌연한 퇴진이 「폭탄선언」이었대도 지나친 표현은 아니다.
이상은 물론 객관적으로만 본 얘기다. 「윌슨」자신은 이날 특별 기자회견에서 사임의 이유를 각료급으로서 30년, 노동당수로서 13년, 수상으로 8년을 지내온 지금, 당내의 다른 유능한 인사에게 당과 정부를 이끄는 기회를 물려줄 때가 왔고, 그것은 정치적으로 안정됐고 경제적으로도 정부시책이 궤도에 올라선 지금이 가장 호기인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노동당이 재집권한 1964년 3월 당시 이미 수상직에는 2년 이상 머무르지 않기로 결심했고 작년 12월 여왕에게 금년 3월쯤 수장자리에서 물러날 의사를 전달했다고 덧붙었다.
그는 또 대치불능한 수상이나 정치인이란 없다고 말하면서 그가 물러나더라도 노동당 시책에 아무런 차질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의 후임자가 결정될 때까지 수상직에 잔류, 그 후에는 하나의 평의원으로 의원생활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그의 갑작스런 사임이 전면적인 사회주의 정책을 요구하는 당내 좌파와 이에 반대하는 우파간의 분열 때문이라고 보기도 한다.
47세 때 지난 1백50년이래 가장 연소한 나이로 수상에 취임, 평화시 수상으로는 최장 기록을 세운 「윌슨」은 노동당출신의 수상으로는 처음으로 재직 중 사퇴하는 또 하나의 기록을 세우며 물러난 셈이다.
그의 후임자로서는 64세인 「캘러헌」외상이 가장 유망시 되고있고 「데니스·힐리」장상, 「로이·젱킨스」내상, 「앤더니·크로슬랜드」환경상 등도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동력상 「토니·벤」, 그리고 고용상 「마이클·푸트」 등 좌파도 나설 것이나 그들이 수상으로 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한 것으로 보이고 있다.
결국 유망한 후보들이 모두 중도파들이라는 점에서 영국 정부의 대내외 정책에 불변하는 없을 것이라는게 「업저버」들의 전망이다. 그리고 「윌슨」의 퇴진이 「마거리트·대처」역사가 이끄는 보수당의 집권가능성을 높여주는 것으로는 적어도 현재로는 보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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