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직이 싫어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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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어느 나라에서건 누구든지 한번쯤 돼 봤으면 하는 국회의원직에 오히려 싫증이 나서 중도하차 하겠다는 의원이 있다면 잘 믿어지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최근 서독의 사민당소속 「프랑크·핸쉬케」(화학공학자 출신) 의원 등 4명은 원내교섭단체의 지나친 간섭에 따라 의원활동의 독립성이 상대적으로 위축된 것에 불만을 느끼고 사의를 표하고 나섰다. 이들은 오는 10월3일로 예정된 총선거에서도 무난히 당의 공천을 받아 선거구민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을 전망을 가진 의원들이다.
하긴 「하이네만」전대통령도 74년 재출마 요청을 받았을 때 그것을 뿌리친 전례를 남겨 놓긴 했다.
그 때 「하이네만」대통령은 「텔리비젼」에 나와 자기는 대통령 취임 때 이미 한 임기만을 끝내고 은퇴하기로 약속했고 또 자신은 75세의 고령이라 더 이상 대통령직을 감당할 수 없으며 아울러 자신은 지금까지 나라 일에 충분히 봉사할 만큼 했기 때문에 남은 여생이나마 나라일보다 아내를 더 따뜻이 사랑해야겠기에 그 제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그는 『자기가 싫으면 나라님도 그만둔다』는 옛말을 실증한 셈이다.
「하이네만」 대통령 사의와 이번의 의원들 사퇴소동은 동기가 다르지만 한가지 그들 모두가 재선 전망이 뚜렷한데도 굳이 물러나겠다는 데는 일치한다.
4명의 의원들은 한결같이 원내간부들의 권위에 눌러 의원활동의 독립성을 잃고 또 자신의 본의와는 다른 타협을 강요받는 나날의 정치생활에 모순을 느낀 나머지도 승하차를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그밖에도 여당의원으로 정부의 정책을 지지할 정치적 의무를 지는 동시에 사민당과 연립하고 있는 자민당의 비위를 맞추자니 자연 원래 뜻한 의정활동에 그들의 의사를 반영시킬 수가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따라서 허울만 좋은 의원자리만 지키는 격이 된 이들은 차라리 교수·기자·공학기사 등의 본업으로 돌아가 전념하는 것이 훨씬 자신의 인생을 의의 있게 사는 길이란 것이 이들의 사의 표명의 변이다. 『의원이 맨 뒷자리만 잡고 앉아있다면 무슨 뚜렷한 보람이 있겠느냐』고 반문한 신문기자출신의 「헤르만·라이저」의원은 의원직에 완전히 실망했다고 토로했다.
국회말석에서 하는 일없이 높은 봉급만 타먹기 보다는 직업인으로서 응당의 일을 하고 그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에 더욱 큰 자부심을 느끼는 독일인들의 건전한 직업관이 이들 의원들의 사의표명에서 바로 드러나고 있다. 【베를린=엄효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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