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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카라치행 비행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인도의 「봄베이」에서 「파키스탄」의 「카라치」로 가는 여객기를 알아보기 위해 「택시」를 집어탔다.
찾아가는 나라의 비행기를 이용하곤 했기 때문에 운전사에게 PIA(파키스탄항공)로 가자고 했다. 그러나 그는 IRAN항공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 까닭은 가뜩이나 인도와 「파키스탄」은 사이가 나쁜데다가 1974년 동「파키스탄」의 독립전쟁 때 인도가 동「파키스탄」을 도왔던 감정(?)의 자연스러운 발로인 것 같았다. 따라서 서「파키스탄」과는 평화협정을 맺지 못하고 줄곧 긴장상태에 놓여있었다. 「파키스탄」 항공이나 인도항공이 서로 노선을 철수하고 항공사업소를 폐쇄했다. 그래서 이 두 나라의 공중연락은 제3국의 비행기인 IRAN항공 KLM「스위스」항공이 도맡아 한다는 것이다.
한편 「파키스탄」항공의 국제선으로서 「카라치」에서 일본 동경으로 가는 노선을 보니 인도상공을 직선으로 날지 못하고 「스리랑카」의 「콜롬보」, 「말레이지아」의 「쿠알라룸푸르」로 해서 돌아가게 되어있다.
나의 좌석 바로 옆에는「차도르」(얼굴을 가리는 설핏한 천)차림의 여성이 앉아있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생각은 간절하지만 「이슬람」교의 풍습에서는 남자가 여자에게 말을 건넬 수가 없어 젊은 여성인지, 할머니인지 그것만이 몹시도 궁금했다.
이때 마침 「스튜어디스」가 입국「카드」를 나누어주기에 기입을 하는데 이 여성은 나에게 얼굴을 향하고 있는가 하더니 기입이 다 끝났을 때 『「프로페서」이시군요. 미안하지만 「볼펜」을 좀 빌려주실 수 없을까요?』한다. 내가 기입을 할 때 물끄러미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물론 검은 「베일」의 「차도르」로 얼굴을 가린 채로 말을 건네오는데 그 또랑또랑한 영어발음으로 보아 분명히 젊은 「인텔리」여성이었다.
이 여성이 먼저 말을 걸기 때문에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었는데 콧날이 서고 눈망울이 큼직해 보이는 「아리안」족 계통의 여자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 짙지 않은 화장냄새가 그윽히 풍기는 것이 더욱 이국여성에 대한 강렬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카드」기입을 끝내더니 『저는 국민학교 교사인데 「파키스탄」에 살고 있어요. 같은 운명을 지닌 선생의 나라에 그전부터 많은 관심을 가졌었는데 처음으로 한국사람을 만나뵈니 기쁘기 그지없어요』라고 한다. 나는 우선 갖고 다니던 우리 나라 우표 몇 장을 선물로 주었다. 이 여성은 고맙다고 탄성을 올리며 받는 바람에 손이 서로 맞닿았다.
종교와 사상으로 각기 분열된 「파키스탄」사람과 한국사람과의 해후에서 기묘한 기쁨 같은 것을 느꼈다. 이 여성은 비록 「차도르」로 머리에서 목까지를 가렸으나 앞이 잘 보이는 설핏한 천이어서 나의 얼굴을 잘 볼 수 있지만 나는 이 여성의 얼굴을 똑똑히 보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안타까왔다.
우리들의 대화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정치적인 문제를 비롯한 오만가지 이야기였는데 여성은 「파키스탄」의 「이슬람」교도이면서도 편협 되지 않고 모든 것을 냉철히 보는 세계관을 지니고 있었다. 이 여성은 비록 인습 때문에 「베일」을 쓰고는 있지만 세계의 모든 장벽을 뚫어야 한다고 부르짖는데서 적지 않은 감명을 받았다.
우리 나라와 같이 분열된 민족의 설움을 몸소 느끼고 있는 사람의 발언이기에 더욱 진실해 보였다. 이 여교사에서 배우는 것이 많아 이대로 영원히 하늘을 날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봄베이」를 떠난지 1시간40분만에 「파키스탄」의 「카라치」공항에 내렸다. 날씨가 음산하며 우리 나라 가을처럼 쌀쌀했다. 그동안 더운 인도남부를 다닌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지도 모른다.
공항에서 입국절차를 끝내고 이 여교사와 헤어질 때 일생동안 기억해두고 싶으니 「베일」을 좀 벗을 수 없느냐고 했더니 그것만은 절대로 안된다고 했다. 「모나리자」의 신비의 미소 못지 않을 이 여성의 얼굴을 못 보는 대신 그의 아름다운 목소리만은 영원히 나의 얼 속에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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