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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 꽈~악 채운 공연 종합선물세트 하지만 뒷맛은 허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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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8호 24면

18일 공개된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창작 뮤지컬 지원에 앞장서 온 충무아트홀이 개관 10주년을 맞아 아시아 시장을 겨냥해 직접 제작한 야심작이다. 제작비 40억원을 들이고 유준상·류정한·한지상·박은태 등 쟁쟁한 스타를 대거 기용한 대작인 만큼 그 완성도가 자못 궁금했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3월 18일~5월 11일 충무아트홀 대극장

결론부터 말하면 웬만한 유럽 라이선스 뮤지컬 못지않다고 할 수 있다. 19세기 유럽을 배경 삼은 화려하고도 음산한 비주얼, 시종일관 웅장하게 빵빵 터지는 음악은 공들인 흔적이 역력했다. ‘삼총사’ ‘잭더리퍼’ 등 체코 뮤지컬을 재창작 수준으로 각색해 롱런 상품으로 만든 왕용범 연출, 이성준 작곡가 콤비의 오랜 노하우가 집약된 무대는 안무가 서병구, 무대디자이너 서숙진, 의상디자이너 한정임 등 노련한 프로 창작진을 병풍처럼 두르고 실력과 인기를 겸비한 스타들을 내세워 ‘상업 뮤지컬이란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는 만화경 같았다.

소재 선택부터 영리했다. 한국적 소재 찾기에 연연하지 않고 과감히 ‘옛날 유럽 이야기’를 녹여냈다. 우리 관객이 가장 선호하는 장르이며 해외 진출에도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과학기술이 야기하는 사회윤리적 문제를 다룬 최초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1818년 출간 이후 영화·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매체로 200여 년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아온 글로벌 킬러 콘텐트다. 생명공학이 첨단으로 치닫는 오늘,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인간의 욕심에 대한 경고라는 주제는 유통기한 없는 울림을 준다. 올해만 해도 지난 2월 영화 ‘프랑켄슈타인:불멸의 영웅’이 개봉했고, 10월 영국 내셔널시어터의 연극이 예술의전당에서 라이선스로 제작되는 등 200살 먹은 ‘프랑켄슈타인’은 여전히 핫한 소재다.

원작에 없는 앙리 뒤프레라는 인물은 가장 돋보이는 설정.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실험을 돕는 조력자로, 빅터 대신 기꺼이 죽음을 택할 정도로 뜨거운 우정을 바치지만 결국 빅터의 실험 재료로 쓰여 괴물로 부활한다는 플롯에서 오는 파토스가 드라마의 중심축이다. 복수와 응징의 스릴러에 남자의 우정과 의리라는 낭만을 덧입혀 감동의 증폭을 노렸다. 일그러진 겉모습과는 반대로 순수한 영혼을 가진 괴물의 고뇌를 폭발하는 고음으로 노래한 한지상의 연기 또한 압도적이었다. 지난해 7편의 뮤지컬에 출연하며 고루 호평을 받았지만 ‘한방’이 없었던 그에게 ‘괴물’역은 작품과 배우의 진정한 ‘윈윈’관계란 무엇인지 웅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싸한 종합선물세트엔 막상 먹을 것이 없는 법. 3시간을 꽉꽉 채워 많은 걸 담았지만 뒷맛은 허전했다. 혼신의 힘을 다한 배우들의 연기와 거대한 실험실 세트만이 뇌리에 남았다. 흥행공식에 너무 빠삭한 것이 오히려 독이 된 걸까, 기존 작품들의 인상적인 장면들이 메들리처럼 떠올랐다. 딱 해외 진출용 ‘맞춤형 기획상품’이란 인상을 털어낼 수 없었다.

뮤지컬은 대중예술이다. 반드시 충격적으로 새로워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중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 잘 팔리면 그만이다. 문제는 대중의 입맛이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것. 현재의 대중에 영합하는 것이 아닌, 미래의 대중을 향해 조금은 앞서 가야 하는 이유다. 물건이라면 ‘신상’으로서 어필하기 위한 조건이 있을 터. ‘짝퉁’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독자적인 스타일이 있어야 한다.

‘프랑켄슈타인’만의 스타일은 뭘까. 굳이 말하자면 ‘절제 없이 부풀린’ 스타일 정도? 11명 주요 출연진 전원에게 2막 상당 부분을 할애해 1인2역을 맡긴 것이 대표적이다. ‘지킬앤하이드’ 이후 스릴러 뮤지컬 필수 아이템이 된 ‘변신’코드를 극대화하려는 전략으로 보였지만 정작 인간의 이기적인 자화상을 그린다는 1인2역의 개연성을 어필하지 못해 별 감흥이 없었다.

23일 방송된 ‘K팝스타3’를 보며 ‘프랑켄슈타인’이 떠올랐다. 톱6에 오른 후보들은 모두 우열을 가르기 힘든 쟁쟁한 실력자지만 정글 같은 자본시장에서 누군가는 살아남고 누군가는 잊혀질 운명이다. 그 운명을 가르는 것은 뭘까. ‘국제가수’ 싸이의 ‘청개구리’와 ‘월드스타’ 레이디가가의 ‘본 디스 웨이’를 절묘히 섞어 부른 ‘알맹’에 대한 박진영의 심사평이 새길 만했다. “굳이 알맹이 가요계에 필요한 이유가 뭘까. 잘하기는 정말 잘한다. 하지만 새로운 게 뭐냐. 남의 흉내 내지 말고 자기 목소리를 내라”고 했다. 이승환의 ‘천일동안’을 열창한 ‘아메리칸 아이돌’ 출신 한희준에게 양현석은 “분명 노래를 굉장히 잘 하는데 가요계에 우뚝 서려면 자신만의 무기가 있어야 된다”고 했다. 박진영도 “Who are you?”란 질문을 다시 던졌다. 결국 알맹과 한희준은 탈락했다. 뮤지컬 창작자들도 기억해야 할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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