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5·24 언급 없이 유연한 대북 제안 … 김정은, 못 뿌리칠 것”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박근혜 대통령은 28일 독일 드레스덴 연설에서 ▶인도적 문제 해결 ▶민생 인프라 구축 ▶동질성 회복이라는 남북관계 3대 어젠다를 제시했다. 비핵화와 교류협력을 동시에 추진한다는 의지를 공식화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선(先 )비핵화, 후(後) 교류협력’과는 뉘앙스가 다르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통일대박론에 이어 나온 박 대통령의 연설은 향후 남북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윤덕민 국립외교원 원장과 김근식 경남대 교수가 진단했다. 중앙SUNDAY 안성규 외교·안보 에디터가 좌담을 진행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네덜란드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 참석과 독일 국빈방문을 마치고 29일 오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드레스덴 연설을 포괄적으로 평가한다면.
▶윤덕민=드레스덴은 헬무트 콜 총리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직전 연설한 곳이다. “역사의 순간이 허용한다면 나의 희망은 언제나 통일”이라는 연설이다. 그곳에서 대통령이 연설했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우선 박 대통령이 정치적 의지를 보였다는 게 중요하다. 두 번째는 연설이 탈정치적이란 점이다. 기능적이며 남북 교류나 인도적 지원을 망라한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실용적인 안을 담고 있다. 세 번째는 국제 협력의 요소를 강조했다는 점이다. 북·중·러 삼각 협력을 통한 방안, 6자회담을 통한 비핵화 등 국제 협력을 통한 문제 해결 의지를 밝혔다. 우리가 지향하는 통일의 지향점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통일에 관련된 이념이나 정치적, 인위적 통합 등을 이야기했다면 드레스덴에서는 실용·기능적 측면에서 접근한 것 같다.

▶김근식=박 대통령이 연초에 말한 ‘통일대박론’ 이후 급격히 통일 담론이 많이 생겨났다. 일각에선 북한 압박을 통한 붕괴를 기대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했다. 하지만 드레스덴 연설을 보면 그런 우려는 안 해도 될 듯하다. ‘꾸준한 교류·협력을 통해 경제 공동체를 만들고, 동질성을 회복하는 과정을 통해 평화 통일을 달성하며, 남북 간 주민이 자유로운 선택을 하게 한다’는 접근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의 화해 협력을 통한 점진·단계적 통일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아 야권과 진보진영도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비핵화를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지 않았다고 우려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연설은 상당히 유연한 입장을 담았다. 비핵화와 남북 화해·교류·협력이 동시에 갈 수 있는 구조로 돼 있다. 이명박 정부 때는 통일 항아리와 통일세와 같은 통일 담론이 있었는데, 방점은 북한 압박에 의한 붕괴에 있었다. 비핵화를 전제조건으로 해서 막혔다. 그에 비하면 유연해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 하겠다.

-북한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윤=현 북한 내부 정세는 남북관계보다 3대 세습 체제를 구축하며 내부 결속을 다지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최근 일련의 로켓·미사일 발사나, 계속되는 발사 준비 모습들은 대외적 환경 속에선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수순을 밟는 것이다. 따라서 당장은 이번 제안을 수용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제안을 구체적으로 보면 사실 북한에 불리한 게 없다. 예를 들어 산림 녹화 산업이나 모자 보건 지원, 농업·축산 지원 등은 북한에도 좋은 것이다. 실무적 수준의 접촉을 통해 조금씩 길이 열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금년 초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되면서 남북 간 대화 국면이 있었는데, 이후 교착기가 형성됐다. 한국과 미국은 군사훈련 중이고, 그 훈련에 맞대응하면서 북한은 수십 발 이상 로켓을 발사하고, 노동미사일도 쏘고 있다. 최고 존엄 훼손을 이유로, 남쪽이 비방·중상 중단 합의를 깼다고 비난하고 있다. 국면이 교착돼 있어 당장 제안을 환영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런 점에서 북이 당장 반응하기보단 대통령이 돌아와서 드레스덴 구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북한에 우리가 먼저 고위급 접촉을 제안하게 될 경우 성사 가능성 있을 듯싶다.

▶윤=북한은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는 것 같다. 북한 입장에서는 한·일 관계가 악화돼 일본이 한·미·일 공조로부터 이탈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질 수 있다. 얼마 전 이란의 잠정 핵 타결을 보고, 그 정도라면 자신들의 핵도 국제사회가 묵인할 것이란 긍정적 사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또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사회나 미국이 대외정책에 있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최근 북이 미사일 사거리를 연장시켜 나가며 훈련하는 점이 우려된다. 이런 측면을 종합하면 박 대통령의 구상을 당장 환영하진 않겠지만, 장기적 안목에서 제안이 북에 도움이 되고, 또한 러시아·중국과의 관계 속에서 북한에 돌파구도 될 수 있어 최종적으로 뿌리치진 않을 것이라 본다.

-어느 선까지 북한이 수용할까.
▶윤=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한국의 통일을 주도로 이어지는 것이라면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부 내용은 북한에 이득이 되는 요소가 있다. 커다란 통일 담론 속에서 특정 단계라고 한다면 주저하겠지만 개별적 사업이어서 선별 수용할 것으로 보인다.

▶김=남북 관계를 돌아보면 북한은 나름의 방어막을 친다. 우리는 우리 안을 내놓고, 고위급 접촉에서 마주앉아 대화하다 보면 북이 원하는 안이 있지 않겠는가. 그 자리에서 남북이 서로 합의 가능한 사업 아이템이 나올 수 있다.

▶윤=김정은 정권은 기로에 서있다. 장성택 처형 이후 중국과의 경제 관계에 변화가 있고, 무역도 원활치 않다. 경제와 민생을 회복시키는 게 김정은의 중요 과제라면 박 대통령이 제시한 여러 요소 중 분명 유혹을 느낄 만한 것이 있을 것이다.

-드레스덴 구상이 비핵화와 교류 협력을 동시 추진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인데.
▶윤=이번 연설에 세 가지 어젠다가 있지 않은가. 우선 인도적 문제(agenda for humanity)는 비핵화와 무관하며, 동질성 회복(agenda for integration) 역시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공동 번영을 위한 민생 인프라(agenda for prosperity) 분야의 몇 가지 사업들, 통신과 교통 인프라 등은 북한의 진정성 있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거다. 희망 섞인 관측인지 모르겠지만 교류 심화 과정에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김=비핵화를 전제로 하지 않았다는 뉘앙스를 풍긴다는 점, 5·24 조치를 우회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번 연설에선 5·24 조치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모든 사업이 다 5·24조치와 관련될 수밖에 없는데, 이의 철회를 공식적으로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5·24를 우회한다는 의미가 있다. 사업이 시작된다면 5·24조치는 형식적으로 사문화된다고 봐야 한다. 그간 남북 관계의 발목을 잡아온 5·24조치를 넘어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면 국면이 어려워진다.

-박 대통령의 제안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제안과 다른 점은.
▶윤=MB 정부의 ‘비핵·개방 3000’은 일정 부분 북한의 결단이 있으면 우리가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드레스덴 제안은 한발 더 나아가 구체적이며, 북한 주민들에 대해 확실하게 삶의 질을 높이고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세 가지 어젠다 모두 민생을 올려주겠다는 제안 아닌가. 그게 MB 때보다 강조된 부분이다.

▶김=접근 방법이 다르다. MB 때는 조건부였다. ‘북이 이러면 우리가 이러겠다’는 식이었다. 조건부 협력 제안이어서 북이 받을 수 없는 조건이면 논의 자체가 시작될 수 없었다. 반면 이번 연설에선 단서 조항을 별로 볼 수 없다. 독일 통일에서도 보듯 통일이 역사적 소명이고 과제이므로 우리가 먼저 제안한다는 것이다. 한반도 통일을 위한 남북 간 화해·협력 구상이지 조건부 접근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하고 싶다.

-정상회담이 빠졌다는 야당의 지적이 있다.
▶윤=정상회담을 생각하다 보니 역대 정부는 제대로 된 성과를 내기 어려웠다. 박 대통령은 교류 협력이 잘되면 당연히 정상회담까지 갈 수 있다고 보는 듯싶다. 정상회담을 얻기 위해 뭘 하겠다는 발상이 없어진 거다.

▶김=정상회담을 포함해 앞으로 북한과 줄다리기가 있을 것이다. 하나 쓴소리를 하자면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박 대통령이 피력해온 지나친 원칙주의, 북이 진정성을 보여야 대화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 삐걱거릴 가능성 크다. 우리가 북의 진정성을 검증하는 주체라는 식으로, 일방주의적으로 나간다면 협의 과정이 어려워질 것이다. 신뢰의 상호성, 진정성의 상호성이 중요하다.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라 했는데 그 방법론치고는 약하지 않나.
▶김=통일대박론에서 대박은 통일을 원샷으로 하겠다는 의미는 아닌 것 같다. 여기에서 대박이란 점진적 과정을 통해 통일이 됐을 때 통일이 가져올 유·무형의 경제적 효과가 크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번 구상은 대통령의 통일에 대한 접근 방법과 기조를 드러냈다. 꾸준하고 지속적이며 평화로운 방식을 보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남북교류협력사무소 제안은 어떻게 보나.
▶윤=사무소를 두는 것은 장기적인 수순이다. 남북관계를 다듬어 나가기 위한 중요 발판으로써 협력 사무소를 추진하는 것이다.

▶김=역대 정부는 상주대표부 또는 연락사무소를 구상했다. 국가와 국가 사이의 외교적 대표를 염두에 둔 것이다. 교류 협력 사무소 설치 제안은 실무적이며, 박 대통령의 독특한 컬러다. 상호 인정, 상호 체제를 존중하자는 의미다. 교류협력사무소는 이 구상이 매우 경제적·실무적 접근을 염두에 뒀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리=최민우 기자, 임지수 인턴기자 minwoo@joongang.co.kr

오피니언리더의 일요신문 중앙SUNDAY중앙Sunday Digital Edition 아이폰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아이패드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구글 폰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구글 탭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앱스토어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구글마켓 바로가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