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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원 이하 짜리 임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임금은 사용자측에서 보면 생산 요소의 원가의 일부에 불과하겠지만, 근로자로서는 생존의 수단이며 나아가서는 노동의 재생산을 위해 불가결한 비용이 된다.
우리의 임금 수준이 아직도 전반적으로 형편없이 낮은 수준인 것은 임금 체계가 전자의 측면에서만 고려되고 있기 때문이다. 임금도 가격이라면 노동 시장 수급에 따라 값이 정해지는 이른바 시장 원리를 전혀 부정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고용 기회가 절대적으로 모자라고 광범한 실업이 존재하는 시장의 경우, 그 가격은 부당하고 불합리하게 결정되기 마련이다.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길은 오직 근로자의 단체협의 강화나 정부의 노동 정책적 지도로써만 가능하다.
그러나, 현행 노동관계법이 근로자의 쟁의 권한을 상당히 규제하고 있으니 현실적으로는 노사간의 자발적인 협조에 기대하는 수밖에 없게 돼있다. 그러니 정부의 노동쟁의 규제의 참뜻을 잘못 이해하고 이를 싼 임금의 구실로 삼는 사용자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아직도 한달 임금이 1만원 미만 짜리 근로자가 남아 있다는 사실은 이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두말할 필요 없이 쟁의 규제의 본뜻은 경제 개발을 저해할 만큼 분쟁이 가열되는 상태를 막기 위한 것이지 결코 근로자의 정당한 요구를 누르거나 나쁜 근로 환경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기업 입장은 자본 축적의 초기 단계에서 용인되었던 싼 임금 고이윤의 도식에 너무 집착하고 있는 것 같다. 오랫동안 이런 관행에 젖어온 기업가들은 상당한 자본 축적을 이룩한 오늘까지도 종전의 이윤 구성을 바꿀 생각을 않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반면 기술 혁신이나 생산성의 제고를 위해 부단히 노력함으로써 이윤 개념을 시대의 요청에 맞추어 획기적으로 수정한 기업가도 적지 않다. 임금의 사회성에 대한 인식이 남다른 이런 기업들은 정당한 임금을 바탕으로 유기체로서의 기업 조직을 발전시킴으로써 보다 성공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지난 수년 동안의 명목적인 임금 상승도 이런 가업의 선도적 역할에 크게 힘입어 왔다.
그러나 아직도 임금의 절대 수준이 현저하게 낮을 뿐 아니라 격심한 「인플레」가 그나마의 임금 상승을 대부분 잠식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지난 수년간 실질 임금은 거의 오르지 않았거나 오히려 줄어든 예도 적지 않다.
따라서 근로자의 처우 개선이라는 당면 과제는 1차적으로 사용자측이 적극적인 성의를 보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종전의 이윤율 개념을 과감하게 수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경우 적정 임금의 수준이 문제되겠으나 기업 성과의 적절하고 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지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임금이라야 할 것이다. 아직도 우리 제조업의 노무비 비중이 그다지 높지 않고 실질 임금 상승률이 생산성 증가율을 훨씬 하회하고 있기 때문에 임금 상승의 부작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정부의 「행정 지도」가 있기 전에 기업이 납득할만한 근로자 처우 개선을 하여 원만한 노사 관계가 유지 발전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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