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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 싸고 정부 목소리도 兩分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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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국가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金昌國)의 이라크전 반대 의견서 발표로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인권위가 25일 배포한 성명에는 '이라크전은 반인도적 범죄' '미국과 영국의 불법적 침략전쟁' 등의 다소 과격한 문구가 삽입돼 있었으나 26일 인터넷을 통해 배포한 의견서에서는 이 같은 문구가 삭제됐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인권위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인권위의 예상 밖 움직임으로 인한 파장은 컸다.

무엇보다 정부가 이라크전을 지지하고 공병부대와 의료지원단 파견 방침을 정한 뒤에 이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의견이 나온 것은 정부 내 이견이 표면화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 반전 여론을 의식한 국회가 25일로 예정됐던 파병동의안을 처리하지 못한 시점이어서 향후 파병안 처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에서는 즉각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홍사덕(洪思德)의원은 "이 같은 이견 표출은 정부의 중추신경 마비증세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북핵문제 해결 등을 앞두고 매우 나쁜 징조"라고 우려했다.

김용갑(金容甲)의원도 "한마디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정부기관에 시민운동가와 좌파 인사들이 대거 투입되다 보니 이런 일이 나온다"고 비판했다.

민주당도 문석호(文錫鎬)대변인 이름의 논평을 통해 "우리 정부가 파병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황에서 국가인권위가 이라크전에 반대하는 성명을 낸 것은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반면 이상수(李相洙)사무총장은 "민주주의가 성장했다는 경이로운 사건"이라며 정부 내 자유의사 표현을 강조했다. 박양수(朴洋洙)의원도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라고 만든 단체에서 당연한 반응이 아니냐"고 말했다.

청와대는 논란 확산을 경계하면서 한편으로는 파병 당위성에 대한 다각적인 홍보에 나섰다. 라종일(羅鍾一)국가안보보좌관은 "시민사회 성숙과 함께 반전.평화운동에 시민들이 적극 참여하는 것은 긍정적"이라면서도 "국제정치의 현실에서는 군대와 무력이 상당히 사용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희상(金熙相)국방보좌관도 "골목이 튼튼하려면 강한 골목대장이 나와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없는 것보다 낫다는 패권 안정론 등을 폭넓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역풍이 만만치 않은 상태다. 당장 유인태(柳寅泰)정무수석이 이날 참여연대 등 10개 시민단체 간부들과 하려던 비공개 간담회가 이들 단체의 거부로 무산됐다.

10개 시민단체는 성명을 통해 "한국군 파병 문제는 결코 설득이나 타협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며 "盧대통령은 반인륜적인 이라크 전쟁 지지와 파병안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盧대통령의 강력한 지지층이었던 네티즌과 젊은 층 사이에서 반전 여론이 급속히 확산돼 곤혹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盧대통령이 이날 "적절한 의사표현은 국민의 권리와 자유"라며 "다만 규범의 틀 안에서 적절한 (반전)시위가 됐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레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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