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간제 일자리의 힘, 고급 여성인력이 돌아온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8면

2세 된 딸을 둔 강현아(31)씨는 지난해 한국동서발전에 입사했다. 직장을 그만둔 지 2년여 만이다. 이전에 그는 경기도 북부의 지방자치단체에서 기록물 관리 전문요원으로 3년 동안 공무원 생활을 했다. 관련 분야 석사 학위도 갖고 있다. 하지만 출산과 육아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쓰며 직장에 계속 남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육아에 집중하기엔 부족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일까지 떠맡아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다. 그러다 남편의 직장 때문에 경기도에서 서울로 이사하면서 “이제 일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동서발전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채용 공고를 보게 됐다. 그가 맡는 업무도 예전과 같은 기록물 관리다. 오전 10시에 출근해 오후 6시까지 주 5일 근무한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데려오기에 딱 좋은 맞춤형 시간을 선택한 것이다. “제 길을 다시 찾았다는 생각에 책임감도 높아지고, 재미있다”고 한다. 정규직이어서 임금이나 복지에 차별도 없다.

 이 회사 인사팀 최문정씨는 “전문적인 재능을 가졌지만 출산이나 육아 부담 때문에 경력이 단절된 여성 인력들에겐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선택제가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동서발전은 올해도 경력이 단절된 12~13명의 여성 전문인력을 시간제 정규직으로 채용할 계획이다.

 출산이나 육아 때문에 일자리를 놓을 수밖에 없었던 고급 여성인력들이 일터로 돌아오고 있다. 시간제 일자리를 활용해서다. 헤드헌팅 전문업체인 브레인피플의 류영미 대표는 “시간이 지날수록 시간제 일자리를 문의하는 여성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며 “대부분 프로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외국계 기업인 A사는 최근 이 회사를 통해 미국 회계사(AICPA) 자격증을 가진 경력단절 여성을 시간제 근로자로 채용하기도 했다.

 CJ그룹은 디자인, 인사, 마케팅, 법무와 같은 전문직군까지 경력단절 여성들에게 시간제로 개방했다. CJ리턴십제도다. 지금까지 200여 명을 채용했다. 예전 경력을 이어주는 자리에 배치된다. 나이나 학력에 제한이 없다. 급여와 일부 현금성 복리후생만 근무시간에 비례해 지급될 뿐 나머지 대우는 일반 정규직과 같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김동욱 기획홍보본부장은 “질 좋은 일자리는 결국 능력과 성과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에 시간제 일자리도 그런 면에서 출산 등으로 불가피하게 고용시장을 떠나 사장될 위기에 처한 여성 고급인력의 귀환을 독려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국고용정보원은 27일 취업포털 워크넷(www.worknet.go.kr)에 시간선택제 일자리 전용서비스를 개설했다. 4대 보험이 적용되고, 1년 이상의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업체를 망라하고 있다. 구인이나 구직뿐 아니라 자신의 조건에 맞는 업체를 찾을 수 있도록 검색 기능도 넣었다. 따라서 근무일수, 요일, 형태, 시간을 구직자가 선택해서 이에 맞는 기업을 골라 취업문을 두드릴 수 있다.

 한국고용정보원 유길상 원장은 “특별한 기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직종뿐 아니라 전문적인 경력이나 능력을 필요로 하는 직종에 이르기까지 모든 구인 내용을 총망라할 계획”이라며 “이를 통해 고급 여성인력이 경력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고, 저소득층에는 손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기찬 선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