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서정쇄신과 신상필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연두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은 나라가 망하는 원인으로 외부의 침략과 부패로 인한 내부의 붕괴를 들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 두 가지가 각기 독립적 원인일 때도 있었지만 대개는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부패로 인한 내부의 분열이 외부침략의 유인이 된 경우가 일반적이었던 것이다. 「로마」제국의 분리·멸망이 그러했고 중원의 주인교체가 모두 그러했다. 먼 외국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고구려와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패망한 기본원인도 내부의 분열에서 찾을 수 있다.
기강이 확립되어 상·하가 단결된 고구려는 수·당의 백만 침략군을 격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부가 분열되자 고구려는 얼마 후 허무하게 패망했다.
지금 우리의 형세는 우리의 허점만을 호시탐탐 노리는 북괴와 대치하고 있는 처지다. 북괴는 우리의 내부 분열을 기다릴 뿐 아니라 갖은 방법으로 이를 조성하고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나라를 지키려면 국민의 화기로운 단합이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국민의 단합을 해치는 여러 요인 중 가장 위험한 것이 바로 부정부패현상이다. 사회에 부패와 불공정이 만연할 때 대부분의 국민은 불신과 소외감에 빠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정신풍토 아래선 국민의 단합을 기하긴 어려운 법이다.
우리 사회에서 부정부패일소가 안보적 차원에서 제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년 3월에 시작된 정부의 서정쇄신 작업은 전에 없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었다. 새해 들어 정부는 서정쇄신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을 다짐하고있다.
그 결과 민원창구의 공공연하던 급행료수수 등 눈에 띄는 공무원의 부패현상은 현저히 줄어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 서정쇄신이 만족할만한 단계까지 이르지 못했다는 데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공공연한 금품수수나 증수회의 빈도가 줄어든 대신 뇌물거래가 은밀화· 다액화 한 경향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부조리의 위험부담이 커졌기 때문에 뇌물거래가 철저히 당사자간에 은폐되고 액수가 커졌다는 것이 항간에서 흔히 듣는 얘기다.
물론 이는 부패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과도기적 현상일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사회에 이러한 현상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은 더욱 강력하고 꾸준한 부패일소 노력이 촉구되는 소이다.
오는 3월말까지 정부는 말썽있는 공무원을 모두 정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는 것이다. 정리대상은 비위에 관련돼 물의를 일으키거나 공공연히 지탄되거나 무사안일 또는 요령위주로 지목된 공무원이라고 한다. 이와 함께 공직자의 명예보호를 의해 서정쇄신에 모범이 되는 공무원은 표창하는 제도도 강구중이라는 것이다.
서정쇄신이 깨끗한 공무원상을 통해 밝고 깨끗한 사회를 이룩하자는 것인 만큼 부정공무원의 추방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청백리가 반드시 사회적 평가를 받고 큰 긍지를 가지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선 모범적인 청백리의 선정이나 정리대장 공무원의 색출이 모두 객관적으로 공평·타당해야 할 것이다. 객관적으로 수긍하기 힘든 청백리의 선정은 그러한 제도마저 한낱 웃음거리로 만들 위험이 없지 않다. 더구나 정리대상이 옥석구분일 경우 당한 개인의 억울함은 말할 것도 없고 이는 국가적 손실이기도하다.
따라서 말썽있는 공무원은 단호히 정리되어야겠지만, 어떤 시한을 정해 무더기로 조처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케이스·바이·케이스」로 조처해 나가는 것이 합당하다고 본다.
부패일소가 안보적 차원에서 요구되는 현실에 비추어 관민이 국가를 지키는 각오로 신상필벌의 원칙을 확고히 지켜가야만 하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