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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수석…고학 7년의 가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서울대 수학교육과 졸업 최경희군>
올해 서울대 수석졸업의 영광은 사대 수학교육과를 수료한 최경희군(23)이 차지했다.
최군의 대학4년간 평균성적은 평점 4.3만점에 4.0. 가난과 외로움을 성실과 근면.절약으로 이겨낸 「형설의공」이었다.
서울도봉구 상계1동 1007 김정식씨(39) 집 5천원짜리 단간 사글세방에서 수석졸업소식을 전해들은 최군은 『수업시간에 스승의 가르침을 귀담아 듣고 그때그때 이해한것뿐』이라고 대학 4년간 줄곧 수석을 차지한 비결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서울 용두국민학교를 거쳐 경동중.고교를 나온 최군은 수재형이라기 보다는 꾸준한 노력형. 고1때 즐겨 읽었던 「벤저민.프랭클린」의 자서전에 담긴 『13개의 덕(덕)』이 학창생활의 밑거름이 됐다고 했다.
최군이 학업과 가장(가장)의 멍에를 걸머지기 시작한 것은 중3년때인 15세 되던해 부터.
6.25때 고향인 평북 선천에서 단신 월남, 목수일로 기반을 잡은 아버지 최원식씨(사망당시 62세)가 위장병으로 시름시름 앓다 별세한 뒤 어머니 차용주씨(49)와 경숙(27.출가.경기도안양시) 경순(18), 경화(13.노원국교 5년)양등 3자매의 생계를 보살펴야 했다. 유산이라고는 도봉동 둑방의 모퉁이에 자리잡은 3평 남짓한 판잣집 1채뿐.
최군의 고학생활은 중앙일보 배달로 시작됐다. 중3 여름방학때 중앙일보 서소문 보급소를 찾아 「중앙소년」을 지원, 하루 2백50부를 배당받아 운동화가 헤지도록 열심히 뛰었다.
고교진학문제는 최군의 큰 고민거리였다. 기술을 배워 당장 급한 돈을 버느냐, 가난을 딛고 학업을 계속하느냐는 두 갈래길을 놓고 아버지 무덤 앞에서 통곡도 했다. 결국 어머니 차씨와 담임선생의 끈질긴 설득으로 고교에 진학, 신문배달을 그만두고 마포구 아현동에서 국민학생 「그룹」지도를 시작했다.
이때부터 대학4년까지 7년동안 가정교사로 가르친 초.중.고생 수는 50여명에 이른다.
어머니 차씨가 일동제약 청소부로 취직, 1개월에 2만7천여원씩 벌어들이면서 각박했던 LQ안 살림은 숨을 돌리기 시작했다.
고3이 되면서 최군은 다시 대학진학여부에 대한 「딜레머」에 빠져 허덕이다 『젊은시절의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씹으며 사대수학교육과를 지망했다. 입학당시 고교동기생 이정걸군(24)의 아버지 이정재씨(56)가 등록금을 대납해 준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도움이었다.
대한진학후 최군은 이씨의 은혜에 보답키 위해 학업에만 전념, 4년간 줄곧 수석을 차지, 「해성장학금」을 꼬박꼬박 탔다.
대학가에 열병처럼 번져가는 「미팅」「카니벌」등 축제분위기에는 관심을 둘 여가가 없었다.
마음이 약해지거나 정신이 해이할 때면 항상 C양(20)이 곁에서 채찍질을 해주었다. 모여고를 나와 친구의 소개로 최군을 알게된 C양은 최군의 오늘이 있기까지 숨은 내조자의 역할을 해왔다. 비록 수저한벌, 가구한점 제대로 갖추지 못한 집안이지만 최군의 생활력과 성실성등 사람됨됨이에 흠뻑 빠져 장래까지 약속했다는 것.
2월26일 졸업식에서 대통령상을 받게될 최군은 3월부터 6개월간 보충역으로 복무한 뒤 대학원에 진학, 수학공부를 계속한다음 외국유학을 다녀와 대학교수가 되는게 꿈.
현재 이화여대 모대학장 집 가정교사로 일하고 있는 최군은 『가정교사 노릇을 3년동안 더해 10년을 채워야 할것같다』며 활짝 웃었다.<김원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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