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김동리씨|대담: 황석영<작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왕유의 시 가운데 특히 좋아하는 구절을 골라 써서 만든 10곡 병풍이 노 작가 김동리씨(64) 서재의 분위기를 한결 기품 있게 해주고있다.
정초 김씨 댁을 찾은 황석영씨는 「데뷔」시기로 따져 김씨의 꼭 30년 후배. 『선생님께선 지난 몇 년 동안 장편역사소설에만 주력하시다가 지난 연말 초기작품 「바위」를 개작 발표하셔서 주목을 끌었는데 앞으로의 작품활동의 어떤 방향을 제시하신 것은 아닙니까.』
『나이를 먹어 갈수록 생각과 계획은 많아지는데 체력이 따라가지를 못해요. 개작은 오래 전부터 생각했던 것으로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이에요. 하지만 신작단편도 계속 써야겠지.』 『우리의 근대문학이 형성된 시기를 1천9백년대의 중반쯤으로 잡는다면 이 싯점에 이르러 우리문학이 당면한 문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문제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읍니다. 선생님께서는 한국문학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해방 무렵 우리 나라 문인 수는 2백여명 이었고 6·25동란 때 그중 반수가 월북 혹은 납북되어 1백여명에 불과했지. 지금의 문인 수를 1천3, 4백명으로 본다면 괄목할만한 증가에요. 그러나 지난 30년,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 지난 70년이 과연 한국문학의 뚜렷한 성격을 부각시켰느냐는 문제에 대해 난 부정적입니다. 왜냐, 첫째는 그 기간이라는 것이 우리 나름대로의 새로운 전통을 형성하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이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유불교의 절대적인 영향에서 탈피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기독교의 영향과 상대되는 개념으로서의 유불교의 영향을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그렇지 우리 근대문학의 문학정신에 골격을 이룬 것이 유불교에 바탕을 둔 인간주의, 즉 「휴머니즘」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은 형이상학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기독교와는 정반대로 지나치게 현실적이에요. 형이상학적 요소가 없다. 즉 철학성이 없다는 것이 한국문학의 취약점이에요. 가령, 우리 나라에서 평론가들이 문제작이라고 내세우는 작품들을 보면 한결같이 민중의식·서민의식을 다룬 것들이잖아요.』
『저도 그렇지만, 젊은 작가들이 민중의식·서민의식에 치우치게 되는 것은 시대적 추세인 것 같아요. 사회가 근대화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구조적 모순이 드러난 때 그러한 것들을 소재로 다루게 되는 것은 불가피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어떤 경우에도 예술적 가치는 전제돼야 하겠읍니다만….』
『작가의식과 예술적 가치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 이상적인 방향이라고 볼 수 있겠지. 그러나 그 작가의식이란 것이 예컨대 사회개조 따위에 치우치게 될 때 문제가 생겨요. 적어도 문학은 사회개조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입장에서는 탈피해야 할 거에요.』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철학성의 빈곤문제나 저희 젊은 사람들이 추구하려는 삶의 고통에 대한 문제나 똑같이 중요하다고 봐야할 것 같아요.』
『문학하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문학의 본질이 무엇인가 아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지.』
김동리씨와 황석영씨의 견해차는 30년이라는 「데뷔」시기의 격차 때문이 아니라 문학에 대한 기본 입장을 서로 달리하기 때문인 듯. 김씨는 누구보다도 제자 문인을 아끼고 많은 문인 제자를 둔 원로 문인. 그래서 또 새해 신춘문예를 통해 3,4명의 제자를 문단에 진출시킨 것이 즐겁다며 파안대소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