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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터키 야당대표 헬기 추락사 … 에르도안이 배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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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30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터키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지난해 12월 집권 정의개발당(AKP)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 내각의 각료가 연루된 비리 수사 후폭풍이다. 터키 지한통신사 서울 주재 특파원 시나시 알파고(26·사진)가 나흘 남은 지방선거를 내다보는 기사를 중앙일보에 보내왔다.

지금 터키에선 25일(현지시간) 에르도안 총리와 관련된 또 다른 음성 파일이 공개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정확히 5년 전인 2009년 3월 25일 야당인 대통합당(BBP)의 무흐신 야즈즈어울루 대표를 포함한 6명이 헬기 추락사고로 숨졌다. 이들은 남부에서 지방선거 유세를 위해 헬기로 이동 중에 산악지대에서 의문의 추락사고를 당했다. 당시 구조대가 72시간이나 늑장 도착하는 등 의혹이 없지 않았다. 이번에 공개될 음성 파일에선 이 사건의 배후에 에르도안 총리가 있음이 밝혀진다고 한다. 터키 정부가 이를 막기 위해 곧 인터넷을 차단할 거라는 얘기도 있다.

 지난달 유튜브에는 충격적인 통화 음성 파일이 잇따라 공개됐다. 에르도안 총리와 아들 빌랄의 대화로 추정되는 통화에서 이들은 거액의 현금을 은닉할 방법을 모의했고, 송유관 건설 입찰과 관련해 기업인으로부터 뇌물을 받을 길을 궁리했다. 이에 앞서 터키 정부는 검찰 수사에 제동을 걸기 위해 경찰 8000여 명과 판·검사 2000여 명을 전보·면직시켰다.

 에르도안 총리는 지금의 사태가 정치적 음모라고 주장한다. 수사 과정이든 유튜브 파일이든 그 배후에 자신의 정적이자 이슬람 사상가인 페툴라 귤렌과 히즈메트 운동(교육운동)이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에 망명해 체류하고 있는 귤렌은 지난주 이례적으로 터키 신문과 인터뷰를 했다. 귤렌은 이번 사건이 양 진영 간의 권력투쟁이라는 시각을 거부하며 “기본적인 인권과 권리, 자유의 문제”라고 말했다. “터키 국가정보국(MIT)이 8~9개월 전에 터키 장관 및 그 자제들과 관련해 부패 이슈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 언론도 이 뉴스를 다뤘다. 하지만 정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부패를 방지할 생각도 안 했다. 사건이 터지자 다른 데 죄를 덮어씌우거나 여론 물타기를 시도한다.”

 에르도안 정부는 지난 20일 트위터 접속을 차단했다.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면 유튜브와 페이스북까지 차단하겠다고 공언했다. 북한 같은 폐쇄국가에서나 벌어지는 일이 터키에서 일어나고 있다. 통치자가 하나의 적을 설정한 뒤 그 적을 물리친다는 명분으로 국가기관에 있는 반대 세력을 다 없애는 것이다.

 지금 터키에선 에르도안 총리의 권력 야심과 국민의 민주주의 요구가 충돌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의개발당은 29.7%의 지지를 얻어 33.3%를 차지한 공화인민당(CHP)에 1위를 내줬다. 한 달 전 37.6%에 비해 7.9%포인트나 빠졌다. 이번 선거에서 에르도안이 패배할 경우 집권당의 많은 국회의원이 이탈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에르도안이 권력교체를 순순히 받아들일지 관심이다.

sinasi.alpag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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