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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무대 하얀 물 … 삶의 모순 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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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28∼31일 내한공연을 앞두고 있는 ‘부퍼탈 탄츠테아터’의 ‘풀 문’. ‘현대 무용의 혁명가’ 피나 바우쉬의 작품답게 특유의 유머와 격동적인 춤, 아름다운 무대가 어우러진다. [사진 LG아트센터]
루츠 푀르스터

현대 무용의 전설, 피나 바우쉬(1940∼2009)의 안무작 ‘풀 문(Full Moon)’. 28∼31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바우쉬가 1973년부터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2009년까지, 무려 36년 동안 이끌었던 독일 무용단 ‘부퍼탈 탄츠테아터’의 일곱 번째 내한공연이다.

 바우쉬의 2006년 안무작 ‘풀 문’을 들고 아시아 투어 공연 중인 ‘부퍼탈 탄츠테아터’의 루츠 푀르스터(61) 예술감독을 e메일로 인터뷰했다. 그는 75년 바우쉬의 ‘봄의 제전’에 캐스팅된 뒤 지난해 4월 예술감독을 맡기까지 한해도 거르지 않고 ‘부퍼탈 탄츠테아터’와 함께 작업을 했던 무용수다.

 그는 ‘풀 문’을 두고 “관객들이 자신의 생각과 개성대로 제각각 다른 감동과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풀 문’은 무용수들이 검은 무대에서 폭우처럼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춤을 추는 장면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지난해 전지현이 출연한 주방용품 휘슬러 광고에도 차용됐다. 파도와 폭우를 그려내는 물의 절경이 인생이 가져다주는 황홀경과 그 속에서 인간이 마주해야 하는 불안감·두려움을 표현한다. 바우쉬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풀 문’엔 줄거리도, 캐릭터도, 메시지도 없다.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대사, 소리와 이미지가 변화무쌍하게 변하면서 관객들의 상상력과 감성을 자극한다. 이는 무용단 이름 ‘탄츠테아터’의 특징이기도 하다. 바우쉬는 73년 독일의 서부 산업도시 부퍼탈의 시립공연장 발레단의 예술감독 겸 안무가로 취임하면서 무용단 이름을 ‘부퍼탈 탄츠테아터’로 바꿨다.

 -바우쉬는 ‘탄츠테아터’를 20세기 현대무용의 가장 중요한 사조로 정착시켰다.

 “영어로는 ‘댄스 시어터(Dance Theatre)’인 탄츠테아터는 무용과 연극을 결합한 예술을 뜻한다. 하나의 작품 속에 무용·연극뿐 아니라 무대미술·의상·음악 등 다양한 예술이 융합돼 있다. 특별한 체계 없는 자유로운 형식으로 인간 내면의 감정을 표현한다. 형가리 출신 안무가 루돌프 폰 라반(1879∼1958)이 처음 사용한 개념인데, 바우쉬를 통해 뿌리내렸다. 바우쉬는 폴크방 발레단의 주역 무용수로 활동했지만, 68년 안무가로 데뷔한 뒤론 고전 발레의 정형화된 동작에서 벗어나 현대무용의 새로운 어법을 만들어냈다.”

 ‘부퍼탈 탄츠테아터’는 바우쉬가 타계한 뒤에도 바우쉬의 작품만으로 전세계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5년 동안 신작을 내지 않았는데도, 1년의 절반을 독일 이외의 나라에서 초청 공연을 할 만큼 인기있는 무용단이다.

 -인기 비결이 뭘까.

 “바우쉬가 살아있을 때보다 무용단은 더 바빠졌다. 가장 큰 인기 요인은 그의 작품 속에 담긴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움직임의 주제를 ‘인간’에 맞췄고, 무엇이 인간의 움직임을 만들어내는지에 주목했다. 그는 작품 속에 인간의 폭력성과 정치적 모순 등 사회 비판적 이슈를 담아내면서, 이를 공포·불안·고통·행복 등 인간 내면의 다양한 감정으로 표출시켰다. 그의 작업 과정도 매우 인간적이었다. 늘 주변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했고, 진심으로 소통하고 대화하기를 즐겼다.”

 -앞으로 계획은.

 “내년쯤 신작을 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바우쉬는 절대 자신의 지나간 성공을 되돌아보지 않았다. 앞으로 새롭게 해야 할 일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그는 늘 남의 것을 모방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바우쉬에게 배운 것을 토대로 나는 나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 바우쉬의 작품, 42편을 잘 유지하고 전수하는 것도 우리 무용단의 중요한 과제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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