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영화|대담 유현목<영화감독>|이근삼<서강대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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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유=1895년「프랑스」「파리」에서 첫 영화시사회가 열린 이래 영화「메커니즘」은 금년으로 80년의 역사를 쌓았습니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영화는 가장 유망한 기업으로 가장 대중성 있는 종합예술로 군림했습니다만,「텔레비전·미디어」의 맹렬한 추격으로 갈수록 퇴조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예술로서의 영화가 어떤 벽에 부닥친 것이 아닌가 싶은데….
이=영화는 20세기 과학시대의 기계문명이 낳은 가장 뛰어난 종합예술이었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이제 과학에서 도입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도입했으며 대중사이의 발전이 너무 빨라 도저히 보조를 맞추기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예술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보는 것은 무리입니다. 오히려 과학의 영향을 과감하게 벗어버리는 것이 새로운 돌파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유=실제로 그러한 경향은 얼마 전부터 시작되고 있어요.
미국의「오프·할리우드」운동이라든지,「뉴·시네마」운동이 바로 그것이지요. 보다 대중적인 현상으로는「비디오·카세트」의 적극적인 개발을 들 수 있겠지요.
이=요컨대 대중생활에 얼마나 깊숙이 침투해 들어갈 수 있는가에 영화의 활로가 달려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한국의 대중사회는 서구적 의미의 대중사회와는 다르다는데 문제점이 있습니다. 영화제작자나 영화인들도 영화를 대중의「킬링·타임」을 위한 단순한 상품이상으로 평가하지 않는 자학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유=모두를 그렇게 볼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근본적으로 영화라는 매체가 모든 대중을 골고루 만족시킬 수 없는 것이라면 차라리 관객 층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 바람직합니다.「저급한 대중」으로부터「고급한 특수층」으로 이끌어 올리자는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순수한 예술적 차원에서 영화미학을 과감하게 개발해야 할 것입니다.
이=「섹스」·폭력의 표현문제가 한참 논란되고 있습니다. 예술적인 차원에서「섹스」·폭력의 표현을 무조건 규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단순히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려는 목적일 때는 문제가 되지요. 영화의 기능은 대중을 계몽하는 면도 있는데 우리 나라의 영화는 지나치게 즐거움만을 주는데 집착하고 있으며 그 방법이 졸렬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유=옳은 말씀입니다.「아르눌트·하우저」가 말한 대로 영화는 대중의 예술감상안목을 높여 주어야 하며 그로써「영화가 왜 필요한가」를 인식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이=영화인들의 자세에 문제가 있겠지요. 지난날의 영화예술인들은「아마추어」적인 자세를 지니고 있었는데, 요즘의 영화인들은 철저하게 직업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직업적 영화인이라면 대중을 의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대중을 자신들의 의식세계로 끌어들이려는 일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요. 대중이란 그렇게 쉽게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유=「텔레비전」시대가 영화를 망쳤다는 이야기들은 흔히 하기만,「텔레비전」이라는「미디어」가 인간에게 영상 적 훈련을 시켰다는 점에서는 영화에도 공헌을 했다고 봅니다. 다만 TV영화에 대한 일반의 관심을 영화영상으로 옮기게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영화에 관심 없는 사람들을 영화에 참여토록 하는 것입니다.
속단일는지 모르지만, 앞으로의 영화는 개인단위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누구든지 일상생활 속에서 직접 영화를 만들어 그것을 보는 즐거움을 누리리라는 것입니다.
유=구미에서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8mm·16mm「카메라」보급이 꽤 활발해요. 바로 이 점은 영화가 다시 황금기를 맞이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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