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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삶과 사회, 예술 속에 처방 있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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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사람들의 눈과 귀가 모두 사탄을 상징하는 염소를 향해 있다. 집단적 편향성을 보여준다. 고야가 판화집을 낸 1800년대 스페인의 풍자 그림에서 이념몰이와 집단주의가 만연한 현재 한국 사회도 볼 수 있다”. <사진 1>

문광훈(50·사진) 충북대 독어독문학과 교수가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판화 한 점 한 점을 설명했다.

그가 들여다본 것은 단지 그림 그 자체에 그치지 않았다. 비스듬히 앉아 정면을 흘깃 훔쳐보는 모습을 그린 고야의 자화상 <사진 2>에서는 정면을 직시할 수 없는 부끄러운 현실을 지적했다. 소녀들이 천진난만하게 인형을 던지며 노는 그림 <사진 3>에서는 꼭두각시같이 사는 무기력한 인간의 삶을 해석했다.

문 교수는 22일 네이버문화재단과 세계문화오픈(WCO) 코리아가 후원하는 ‘문화의 안과 밖’ 릴레이 강연의 하나로 열린 ‘예술 경험과 좋은 삶’ 강연에서 “예술 경험을 통해 우리는 보다 선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교수는 예술 작품이 자기 성찰을 유도하고 더 나아가 자기변형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예술 수용자들이 작품을 자신의 경험과 연결시켜 감상하는 예술의 ‘자기연관성’을 이유로 들었다. 자신과 연관 짓다 보면 곧 자신을 성찰하는 단계로 이어진다. “예술언어는 근본적으로 자기를 돌아보면서 성찰하는 언어다. 심미적 경험을 통해 자신의 삶까지 변화시키게 된다”고 문 교수는 설명했다.

세세하게 작품을 분석해 감상하다 보면 자기 성찰도 더 풍부하게 이뤄질 수 있다. 고야의 ‘더도 덜도 말고’<사진 4>에서 문 교수는 당나귀를 그리는 원숭이를 고야 자신으로 해석했다. 어리석은 현실을 대변하는 당나귀를 원숭이가 그리고 있으니, 그 원숭이가 곧 화가 그 자신일 거란 설명이다. 문 교수는 “자조적인 화가의 모습에서 오히려 고야의 깊은 자존감을 느꼈다”며 “비판적인 자의식이 있기 때문에 자조적인 표현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크루아상 결을 하나하나 뜯어내듯 작품을 통해 고야의 내면을 한 꺼풀씩 벗겨내다 보면 수용자 스스로도 성찰할 수 있는 여지가 더 넓어진다는 것이다.

문 교수는 예술을 통해 변화된 개인이 결국 사회를 더 좋게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문 교수는 “예술의 보편성은 좀 더 수준이 높다. 예술 안에서 탐구되는 인간은 전체로서의 인간 존재고, 따라서 여기 묘사되는 현실도 시대를 막론하고 전체로서의 현실인 셈”이라고 했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다. 유종호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이 “우리가 예술에 대해 이렇게 낙관론으로 일관해도 되겠느냐”고 지적하자 문 교수는 “낙관적이라는 분석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 분노하는 것은 쉽지만 그것으로 사회가 질적 성장을 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지적·문화적 토대가 얕은 한국 땅에서 문 교수는 18세기 사상가 실러(F. Schiller)가 주장한 미적 경험의 효과를 실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멀리 보고 유연하게 생각해 차근차근 사회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교수는 “우리 삶에 예술마저 없으면 얼마나 쓸쓸하겠나. 예술은 내가 지탱하는, 낙관적 희망의 끝이다”라고 말했다.

온라인 중앙일보·유재연 중앙선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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