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남자 피겨 간판스타도 연아 닮고 싶다고 하더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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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호 21면

김연아 선수는 데이비드 윌슨(오른쪽) 안무가를 만난 걸 “행운”이라 표현했다. 윌슨의 선곡과 안무는 연아 선수에게 금메달(밴쿠버)·은메달(소치)을 안겼다.

김연아를 본드걸 혹은 세헤라자드로 변신시킨 남자, 안무가 데이비드 윌슨(47). 17일 전화 인터뷰에서 그의 목소리는 종종 떨렸다. “(김 선수가 소치 올림픽에서 받은) 메달 색이 금이 아닌 은이라는 게 이해 안 된다”고 하면서다. “침묵을 택하겠다”며 한 달간 인터뷰를 고사하던 그는 김 선수의 로맨스 소식을 전하자 “정말 잘됐다. (남자친구인 김원중 선수는) 럭키 가이”라며 “연아를 위해서라면 (인터뷰에) 응하겠다. 연아와의 시간은 내게 최고의 시간이었다”고 했다.

김연아의 안무가 데이비드 윌슨에게 듣다

김 선수가 “데이비드와 함께하는 건 행운”이라고 치켜세운 이 캐나다 안무가는 세계 최정상의 피겨 선수를 위한 음악을 고르고 안무를 짜고 연기를 지도한다. 김 선수의 은퇴 무대 역시 그의 작품이다. 윌슨이 2006년 제프리 버틀을 위해 안무한 ‘아디오스 노니노’ 프로그램을 본 김 선수가 “마음에 쏙 든다”며 “(은퇴 무대는)꼭 그 곡으로 하겠다”고 고집했다고 윌슨은 전했다.

-은메달로 실망이 컸겠다.
“(한숨 쉬며) 나는 물론이고 캐나다 TV 해설자들도 ‘말도 안 돼’라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피겨에서 오심의 역사는 길다. 나도 많이(그는 ‘many’를 7번 반복했다) 당했다. 2008년 버틀이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했을 때 그의 예술 점수가 형편없이 낮았다. 버틀은 원래 기술보다 예술적으로 뛰어난 선수인 데다 그날 경기의 예술성은 누가 봐도 최고였다. 그런데 점수는 납득할 수 없이 낮았다. 안무가로서 모욕당한 기분이었다.”

-김 선수의 소치 점수를 분석해보면.
“프로그램 구성 점수를 보면 몇몇 심판이 바닥에 가까운 점수를 줬다. 석연치 않은 부분이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하지만 되돌릴 수 없다. 피겨 스케이팅은 주관성이 점수에 반영될 수밖에 없는 스포츠다. 결국 중요한 건 나 자신에게 떳떳한 연기를 펼치는 거다. 연아는 그런 점에서 행복했을 거라고 본다.”

-금메달을 딴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선수의 연기는.
“아델리나 역시 아름다운 스케이터다. 아델리나에 대해 부정적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그의 프로그램 역시 흥미진진했다. 올림픽 메달을 받을 만했다.”

-소트니코바의 갈라 공연은 어땠나.
“(연아 선수 때문에) 마음이 아파서 갈라는 못 봤다.”

-‘아디오스 노니노’나 ‘어릿광대를 보내주오’ 대신 러시아 색채를 띤 프로그램이었으면 어땠을까. 아사다 마오 선수가 라흐마니노프를 택한 것처럼.
“개최국 관련 곡을 골라야만 한다면 얼마나 지루하겠나. 말도 안 된다. 사실 ‘아디오스 노니노’는 연아가 직접 결정한 거다. 어려운 프로그램이지만 (버틀 이야기를 하며) 꼭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 연아가 자랑스러웠다. 연아는 고집도 있지만 자기가 맘 먹은 바는 재능뿐 아니라 노력을 통해 어떻게든 해내고야 만다. 그 점이 스케이터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대단하다. 참, 마오와 캐롤리나 코스트너(이탈리아)도 대단했다. ‘트리플 악셀은 어떻게 하는 거야’라는 표정으로 연습에 골몰하던 어린 소녀들이 어엿한 숙녀가 되어 마음껏 기량을 펼쳤다. 뭉클했다. 연아는 말할 것도 없고. 처음 토론토 아이스링크에서 만났을 때 연아는 수줍고 말수 적은 소녀였는데….”

-일본에 금메달을 안긴 남자 피겨선수 하뉴 유즈루의 안무도 담당했다.
“하뉴는 남자 김연아 같다. 기술도 좋고 연기력도 일취월장했다. 하뉴는 내게 ‘내 롤모델은 김연아다. 김연아처럼 스케이트를 타고 싶다’라고 하더라.”

-한ㆍ일 피겨계를 비교한다면.
“일본 피겨계엔 시스템이 있다. 선수층도 두텁고, 다양한 분야에 선수들이 포진해 있다. 일본은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피겨 스케이팅 단체전에 나갈 자격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 역시 대단하다. 연아만 봐도 알 수 있다(웃음). 안무가인 나는 선수의 국적을 보지 않는다. 그 선수의 기량과 발전 가능성을 보고 결정을 내린다.”

-김 선수는 이제 링크를 떠났다.
“아쉽지만 연아의 결정을 존중한다. 연아가 보여준 재능과 끈기ㆍ집중력을 볼 때 연아는 뭘 해도 대성할 거다. 연아의 앞으로의 10년, 아니 일생을 고대한다.”

-아이스하키 선수와 연애한다는 건 알았나.
“(즉답을 피하며) 김원중 선수를 만난 적은 없다. 하지만 같은 빙상계 선수들이 사랑을 꽃피운다니 그 자체로 아름답지 않은가. 원중은 럭키 가이다. 부럽다(웃음). 둘의 연애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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