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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석은 27만원짜리 술 공짜 … 음식 싸가는 얌체족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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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라운지 전쟁(lounge war).’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미국 공항에서 벌어지고 있는 카드회사와 항공사들의 라운지 운영 경쟁을 이렇게 묘사했다. 라운지는 공항 이용객들이 출국 전 잠시 쉬어가는 곳이다. 대개 공짜 다과가 제공된다. 기업들은 왜 막대한 비용 부담을 감수하며 라운지를 운영하는 걸까. “아수라장 같은 공항 터미널의 도피처(refuge)이자 오아시스”로 “기업 서비스의 핵심 셀링 포인트”이기 때문이라는 게 WSJ의 설명이다.

 한국 인천공항에도 최근 새 라운지가 들어섰다. 우리은행이 운영하는 프리미엄 라운지다. 이로써 인천공항 라운지 운영업체는 국내외 항공사 5곳을 포함해 8곳이 됐다. 공항공사가 운영하는 우수 기업인(CIP, Commercially Important Person) 라운지까지 포함하면 총 9곳이다. 각각의 특징을 알아봤다.

◆은행들 VIP 고객용으로 운영=지난 14일 오전 인천공항 여객터미널 2층. 이날 문을 연 우리은행 프리미엄 라운지 앞이 사람들로 부산했다. 라운지 관계자와 준공검사차 나온 공항공사 직원들이었다.

 라운지 내부는 카페처럼 화사했다. 4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10개. 한 켠에는 다과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이곳은 지난 1월까지 현대카드 라운지가 있던 곳이다. 현대카드가 4년여의 계약을 끝내고 나가자 대신 우리은행이 들어왔다. 2003~2007년 터미널 4층에서 라운지를 운영하다 철수한 지 7년 만이다.

 최현구 우리은행 공항금융센터장은 다시 라운지를 연 이유에 대해 “세계 공항 서비스 평가를 9연패 한 인천공항은 기업 이미지를 올릴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말했다.

 좀 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현재 인천공항에는 국민·외환·신한·하나은행만 입점해 있다. 최 센터장은 “입점 은행들은 지점 안에 VIP고객용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서비스 경쟁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 라운지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공항 은행사업권 계약은 6월 끝난다. 우리은행은 새 사업권 입찰에 뛰어들 계획이다.

◆요리는 호텔 레스토랑급=우리은행 라운지는 랜드사이드(Land Side, 출국통관 전 구역)에 있다. 은행이 정한 기준에 맞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반면 에어사이드(Air Side, 출국통관 후 구역)에 있는 항공사 라운지는 실제 비행기 탑승객만 이용할 수 있다.

  14일 오후 대한항공 프레스티지(비즈니스석) 라운지에서 만난 회사원 강문구(56)씨는 “회사 일로 우즈베키스탄에 머물며 1년에 몇 차례 한국을 오간다”며 “내규상 비즈니스석은 못 타지만 마일리지를 이용해 매번 라운지를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왕복 1000만원(미주노선 기준) 이상을 지불하는 일등석 승객이 이용하는 퍼스트 라운지는 꽤 호화롭다. 아시아나의 경우 시중에서 병당 27만원에 팔리는 최고급 위스키(조니워커 블루라벨)부터 진·마티니·럼까지 주류만 총 13종류를 서비스한다. 요리도 호텔 레스토랑급이다. 기자가 찾은 14일 오후에는 프랑스 버건디 지방 달팽이 요리와 헝가리식 쇠고기 요리가 나왔다. 아시아나 측은 “일등석 라운지 객단가가 비즈니스 라운지의 세 배쯤 된다”고 밝혔다.

 서비스가 다른 만큼 입장 요건도 까다롭다. 비즈니스석 라운지는 현금을 내거나 마일리지를 공제하면 일반석 승객도 이용할 수 있다. 반면 일등석 라운지는 실제 승객과 마일리지 100만 마일 이상인 승객만 이용이 가능하다. 대한항공 프레스티지 라운지 입장객이 하루 1600명인 반면 일등석 라운지는 하루 200명뿐이다.

◆탈세하면 이용 자격 박탈=일등석 승객이라도 맘대로 이용할 수 없는 라운지도 있다. 랜드사이드 4층에 있는 CIP라운지다. 이곳은 정부가 고용·수출 우수 기업인에게 출입국 편의를 제공하는 곳이다. 라운지 안에서 양 국적사 티켓을 발권할 수 있고 짐도 부칠 수 있다.

 이용 자격은 ▶상시 근로자 800명 이상 대기업과 50명 이상인 중소기업, 최근 3년간 연평균 2% 이상 고용을 늘린 기업 ▶수출 1억 달러 이상 대기업과 300만 달러 이상 중소기업, 최근 3년간 연평균 15% 이상 수출이 증가한 기업당 1명씩이다(2012~2015년 총 2408명). CIP카드 소지자는 라운지 사용은 물론 입·출국 때 외교관·승무원 등이 이용하는 ‘급행’ 통로를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세금포탈 등 범법 사실이 확인되면 바로 이용 자격이 박탈된다. 지난 1년간 37개 기업이 CIP카드를 뺏겼다. .

인천공항=김한별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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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인천공항 아시아나항공 퍼스트 라운지에서 외국인 승객들이 셰프에게 화전(花煎·꽃지짐이)을 건네받고 있다. 대한항공 퍼스트 라운지. 최근 문을 연 우리은행 라운지.

'보따리상' 들로 골머리

워낙 많은 사람이 드나들다 보니 라운지에선 ‘웃지 못할 일’도 자주 벌어진다. 한 공항 관계자는 “비행기에서 술에 취해 내린 환승객이 라운지에서 술을 더 먹고 휠체어에 실려 비행기를 타러 갔다 탑승을 거부당한 일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라운지 안에서만 먹게 돼 있는 공짜 식음료를 가방에 넣어가는 얌체족도 있다. 특히 항공사들은 오전 비행기로 일본에 갔다가 당일 저녁 비행기로 돌아오는 개인무역상(속칭 ‘보따리상’)들로 골머리를 앓는다. 한 관계자는 “매일 수십 명이 라운지에서 만나 아침을 먹고 가방 가득 ‘도시락’을 싸간다. 매일 일본으로 출퇴근을 하다 보니 마일리지가 어마어마해 늘 라운지를 이용한다”고 했다.

 철수한 현대카드 라운지는 “여행객보다 공항 상주 직원들이 더 많이 이용해 부담이 됐다”는 후문이 돈다. 한 상주 직원은 “하루에 삶은 달걀이 1800개씩 없어졌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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