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도 동치미|박문희씨의 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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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가슴을 찡하게 울리는 담박하고 시원한 동치미는 평안도가 제고장이다.
이를 맛보며 자란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오랜 객지생활을 했어도 좀처럼 못 잊어하는 고향의 미각이다.
평양이 고향인 홍문화박사(서울대예대교수) 댁에서는 부인 박문희여사(57)의 솜씨로 매년 김장철이면 평안도식 동치미를 담그고 있는데 왜 그런지 『고향에서 먹던 그맛』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고향에서는 김장양념에 젓갈은 전혀 쓰지 않아요. 대신 생굴을 넣었고 다른 양념도 담박하게 심심하고 시원한 김치를 담갔어요. 김장철이면 키를 넘는 큰 독을 마당에 묻고 독안의 바깥쪽과 바닥을 무우로 깔았어요. 그위는 배추 한켜, 무우 한켜로 독을 채우고는 군데군데 싱싱한 사과를 반씩 잘라 박았어요.』 김치를 담근지 사흘 뒤에는 국물을 만들어 부어야한다. 쇠고기에 물을 붓고 삶은 국물을 이용하는데 기름기를 걷은 맑은 육수에 소금을 타면 된다.
동치미는 꼬리가 말린 무우를 그대로 씻어 담갔는데 꼬리쪽에 매운맛이 있는 때문이다.
『동치미는 이렇다할 양념없이 무우에 소금물만을 부어 익혔는데도 맛이 들면 그 국물의 시원함이란 말로 하기 힘든 것이었어요.』
동치미에도 역시 큼직한 사과를 반씩 잘라 넉넉히 넣어 익혀야 제맛이 난다.
동치미가 익으면 으레 무우보다는 국물이 인기가 있기 마련이다. 평양식 냉면국물로는 동치미국물이 없지 못할 재료이기 때문.
『밖에는 찬바람이 부는 겨울밤에 얼음을 걷어내고 떠낸 동치미국물에 냉면을 말아 이불을 둘러쓰고 먹는 맛이란 평안도 사람이 아니고는 상상도 못할 정도예요.』 박여사는 향수가 듬뿍어린 어조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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