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기고

동반성장이라는 사회적 합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유장희
동반성장위원장

4월이 되면 미국 경제에 중요한 변화가 생긴다. 미국 경제의 회복을 위한 은행규제방안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서브프라임 이후 금융위기 재발 가능성을 최소화하고자 전 연준(Fed) 이사장이었던 폴 볼커에게 개혁안을 주문했다. ‘볼커 룰’로 알려진 이 개혁안은 상업은행이 자기자산이나 차입금으로 채권과 주식, 파생상품 등에 투자하는 행위를 제한하는 등 상업은행(CB)과 투자은행(IB)의 분리를 골자로 담고 있다.

 미국은 대표적인 자유시장경제를 표방하는 국가인데 지난해 12월 의회는 압도적으로 이 개혁안을 통과시켰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미국 경제를 이끌어 가는 금융산업에서 은행업무 간 칸막이를 만들어 중소은행을 보호하는 것은 금융업의 양극화가 심각한 것을 방증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를 모토로 하는 미국에서 국가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1년반 동안 의회의 토론과 공청회를 거쳐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낸 것을 유심히 보게 된다.

 최근 동반성장위원회가 실시하고 있는 중기 적합업종 선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중기 적합업종 선정은 초법적인 행위라는 점과, 규제의 역설에 의해 외국 기업만 득을 본다는 점, 또한 소비자의 선택권 내지는 이익이 저해되고 있다는 주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대기업들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 불공정거래 관행으로 중소기업이 생존 기회를 잃고 있다는 큰 문제가 존재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 끝에 중기 적합업종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이는 한국적 맥락에서 과거 부정적 관행을 바로잡고 장기적인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이자 지속 성장 방안이다.

 이런 관점에서 중기 적합업종 선정은 한국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는 이른바 한국판 볼커 룰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볼커 룰은 국회를 통과한 강력한 규제임에 반해, 중기 적합업종 선정은 한국에서 심각히 제기되고 있는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고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신성장동력을 마련하기 위한 새로운 민간 자율의 패러다임이다.

 적합업종 지정은 초법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 다수의 합의와 공감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볼커 룰이 대형 은행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소 은행들의 지지를 받게 되어 탄생한 법률이라면, 중기 적합업종 지정은 법제화를 하지 않고도 성숙된 사회의식으로 합의를 이끌어낸 결과물이다. 사회적 합의에 대해 지켜지지 않을 때에만 제한적으로 법적 처리하는 방안을 담고 있을 뿐이다.

 한편 일부에서는 규제의 역설을 들어 대기업의 사업 확장을 자제하는 일이 오히려 외국 기업의 국내 시장 잠식을 유인한다고 비판한다. 이는 사실이 아니거나 과장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원회는 이에 대한 사실 자료를 배포함으로써 중기 적합업종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건전한 비판은 향후 중기 적합업종 선정이라는 제도가 보완되고 그 취지를 더욱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나, 왜곡된 논리는 좋은 제도에 상처만 줄 뿐이다.

 끝으로 중기 적합업종 선정이 소비자 선택권 혹은 이익을 저해한다는 주장이 있다. 오늘날 사회 구성원이 다양화됨에 따라 소비자의 취향도 세분화되고 있다. 오히려 대기업의 진출로 골목상권마저 획일화되면 여기를 좋아하는 소비자의 선택은 좁아진다. 또한 골목상권이 무너지면 소비자 선택권은 말할 것도 없고 이에 의지해 생계를 꾸려가는 가족들의 소비행위는 아예 사라져 버릴 것이다.

 요컨대 동반성장과 중기 적합업종 선정은 법이나 규제가 아니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파트너십이며, 경쟁력 있는 산업생태계를 육성하여 다 함께 멀리 가기 위한 사회적 합의임을 강조하고 싶다.

유장희 동반성장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