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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6)|<제자·이철승>|전국학련(88)<제47화>-나의 학생운동 이철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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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5면

<국도극장 사건>
전국학련이 반공반탁의 기반을 확고히 구축해 가자 각계로부터 별의별 주문이 쇄도했다.
두메산골의 교장으로부터 좌익의 맹휴소동을 제거해 달라는 진정에서 성균관 유림의 분규를 수습해 달라는 부탁에 이르기까지 가지각색이었다.
그 중에서도 색다른 것은 불교계의 좌익 축출 요청.
학련은 이 요청을 받아 들여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우선 불교의 총본산인 태고사(현 조계사) 총무원이 문제였다.
당시 총무원장은 박원찬(전 동대이사장) 스님으로 온화한 성품의 중도파였다.
그러나 그 밑에 몇몇 좌익「프락치」가 있어 신성한 법당을 어지럽혔다.
학련은 최범술(해인사 주지) 허영호(재현의원) 유섭(스님·시인)씨 등 민족사상에 투철한 우익스님들과 접촉을 가지며 돌파구를 찾으려 했으나 불교라는 복수영역에 제약점이 많았다. 그렇지만 홍관식 손영섭 김재춘 등 불교계인 동국대생과 오홍석 등은 태고사에 상주하면서 집요한 설득전을 폈다.
그 결과 총무원장에 허영호 스님, 불교청년회장에 김은하씨(학련 서울시 위원장·현 신민당 총무)가 선출되어 불교의 정비가 착수됐다.
학련은 이처럼 대공·반탁투쟁에 무소불위의 위력을 과시했다.
학련은 자체내의 체력증진과 문화창달에도 힘을 쏟았다.
그 가운데서 가장 열을 쏟은 것은 연극과 영화활동-.
당시만 해도 「매스컴」이 발달치 않은 때라 일반대중에게 가장 호소력 있는 것은 연극과 영화였다.
각 지부별로 『법흥왕』『이순신』 등의 사극을 만들어 공연하고 본부에서는 『민족의 절규』라는 반탁투쟁 기록영화와 『가거라 38선』이란 연극을 만들어 야초극장(현 스카라)에서 3일간 공연했다.
「학련의 밤」이라 이름한 이 예술제에는 전 맹원이 매표에 나서 각급 학교생과 일반시민이 대거 참관하여 큰 화제가 됐다.
이렇게 연극에 몰두하다가 큰 봉변을 당한 일이 있다.
47년 초겨울 국도극장에서의 일이다.
당시 국도에선 유치진 작 『자오고』가 공연되고 있었다.
나는 유 선생을 만나 학련연극을 상의할 겸 연극도 구경할 겸 국도에 갔다.
마침 그때 중학생들의 단체입장이 있고 극장측과 유 선생 측간에 입장 인원수를 놓고 시비가 벌어져 있었다.
나는 대뜸 유 선생편을 들어 『예술가를 이렇게 푸대접하기냐』고 항의했다. 그랬더니 힘깨나 씀직한 대여섯명이 달려 들어 『너는 뭐야!』 하며 집단폭행으로 나왔다.
꼼짝없이 당했다. 신분을 밝혔으나 통하지 않아 고군분투했다. 그때 회오리 바람이 일듯 조병후가 문을 박차며 들어왔다.
누군가의 연락을 받고 그는 오홍석 홍관식 양근춘 정국권 등 학련의 맹장들을 대동하고 들이닥쳤다.
조병후는 「봉변준 자가 누구야』고 대갈일성하면서 화분 하나를 번쩍 들어 책상 위에 박살을 내버렸다. 그 바람에 책상 위의 「잉크」병이 산산조각 나면서 모두 「잉크」세례를 받았다.
감히 누구도 대꾸조차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천하장사 조병후를 당할 자도 없거니와 밖엔 줄잡아 5백여명의 학련 맹원이 이미 극장을 포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만 해도 전국학련은 도합 10개 지부연맹을 거느리고 있었다.
전국조직분포는 서울 6개 지구 이외에 경기 6개 지구(인천·수원 의정부 평택 광주 개성 준위2), 강원 5개 지구(춘천 원주 강릉 홍천 삼척 준위3), 충북 5개 지구(청주 충주 보은 영동 음성 준위2), 충남 8개 지구 (대전 공주 논산 부여 서천 보령 홍성 준위4), 전북 7개 지구(전주 군산 이리 남원 정읍 고창 김제 준위2), 전남 21개 지구(광주 목포 순천 여수 담양 장성 곡성 화순 나주 광산 영광 일로 강진 해남 진도 함평 영산포 완도 구례 광양 벌교 고흥 준위2), 경북 8개 지구(대구 포항 김천 경주 안동 영천 예천 영주 준위9), 경남 17개 지구(부산 마산 통영 하동 삼천포 창령 산청 합천 밀양 양산 울산 김해 남해 거창 준위3), 제주 1개 지구 등 89개 지구로 결성준비지구를 합치면 1백16개 지구에 달하는 막강 세력.
서울을 보면 중부지부엔 정윤박(성대) 안중덕(경기), 종서지부엔 최규식(세의대) 천병린(약대), 종동지부엔 김춘성(연대) 황석규 이희길(이상 서울중), 동부지부엔 송흥국(고대) 정성관(상대) 김진철(신대), 남부지부엔 이희준(고대) 고병두(한양공), 용산지부엔 김덕배(동대) 이학구(공대), 서부지부엔 손도심(문리대) 정옥재(성남), 동대문지부엔 이덕원(고대) 유덕훈(상대), 성동지부엔 김재룡(동대), 영등포지부엔 이철우(국대) 등이 포진하고 있었다.
이들은 본부로부터 급거 출동명령을 받고 숨가삐 국도극장으로 달려왔다. 그런데 한가지 희한한 일이 있었다.
당시 학련 출신 경찰 중 이규형 동지가 종로서 외근주임, 김영준 동지가 중부서 외근주임으로 있었고 이들이 경찰「트럭」을 대거 동원, 학련맹원을 싣고 극장으로 달려왔다.
사태가 이쯤되니 극장측은 새파랗게 질려 김동렬 사장이 나와 『학련위원장 이철승인줄 몰랐다』며 백배사죄했다.
그 후 김사장은 학련에 물심양면의 지원을 했고 학련 행사가 있을 때마다 국도극장을 빌려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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