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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CI 신흥국지수 변경 검토 … 제2 '뱅가드 폭탄' 맞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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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지난해 상반기 내내 국내 주식시장엔 ‘뱅가드 주의보’가 울려퍼졌다. 미국의 대형 펀드운용사인 뱅가드가 반년 동안 9조원어치를 팔아치웠다. 한국 경제가 위기에 빠졌다거나 특별한 악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유는 딱 하나. 투자기준으로 삼는 지수(인덱스)를 MSCI에서 FTSE로 바꿨기 때문이다. 원래 쓰던 MSCI는 한국을 신흥국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FTSE는 한국을 선진국 지수에 넣고 있다. 그래서 신흥국 인덱스펀드에 담고 있던 한국 주식을 모두 판 것이다. 매주 3800억원의 매도물량이 쏟아져 나오면서 코스피는 한동안 맥을 못 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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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내년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번엔 중국 비중이 늘면서 한국은 쪼그라드는 ‘차이나 리스크’가 원인이다. MSCI는 지난 11일 “중국 A주를 MSCI 신흥국지수에 편입시키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최종 결정은 올 6월 나온다.

중국 주식시장은 본토에 상장돼 있는 A주와 B주, 홍콩에 상장된 H주·레드칩·P칩 등으로 나뉜다. 시가총액으로 보면 A주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A주는 허가를 받은 외국인만 거래할 수 있고 투자금액도 제한돼 있다. 이 때문에 MSCI는 그동안 지수에 A주를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자본시장 개방에 나서고 주식시장 규모도 커지면서 무시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현재 MSCI 신흥국지수는 중국이 18.9%, 한국이 15.9%를 차지하고 있다. 이 지수를 따르는 펀드가 신흥국에 100억원을 투자한다면 중국에 19억원, 한국에 16억원을 투자한다. MSCI는 A주를 편입할 경우 우선 내년 5월부터 유통 시가총액의 5%만 반영할 방침이다. 이 경우 중국 비중은 19.9%로 늘고 한국은 15.7%로 0.2%포인트 줄어든다.

 별거 아니라고 얕보면 큰코다친다. MSCI 신흥국지수를 추종하는 글로벌 펀드 규모는 1조5000억 달러(약 1600조원) 정도다. 0.2%포인트만 줄어도 국내 주식시장에서 3조원이 넘는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게 된다.

한국투자증권 강송철 연구원은 “MSCI 전세계지수나 MSCI 아시아지수에서도 중국 비중이 늘어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빠져나가는 투자금은 더 크다”고 분석했다. 신흥국 위기론으로 지난 1~2월 코스피가 출렁일 때 빠져나간 돈(2조3000억원)보다 훨씬 큰 금액이다.

 한국이 신흥국지수에 포함돼 있는 한 상황은 더 비관적이다. A주가 100% 반영된다면 신흥국지수에서 중국 비율은 27.7%까지 올라간다. 이 경우 한국(15.9%→14.2%)을 떠날 자금은 약 25조원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온다. 미래에셋증권 이재훈 연구원은 “지수 개편은 조금씩 이뤄지기 때문에 국내 시장에 갑자기 충격을 주진 않겠지만 수급 면에서 큰 악재인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돌파구는 한국이 신흥국 ‘뱀의 머리’를 벗어나 선진국 ‘용의 꼬리’가 되는 것이다. 이미 FTSE나 S&P지수는 한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전 세계 투자자금의 70%가 쫓는 MSCI 지수는 여전히 신흥국에 머물러 있다. 2009년부터 매번 선진국 편입 후보에 오르지만 번번이 좌절됐다. 원화 국제화가 걸림돌이었다. 이재훈 연구원은 “정부가 발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 원화 국제화 추진이 포함돼 있어 앞으로 몇 년 뒤엔 선진국 진입을 기대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다만 용의 꼬리가 되는 게 꼭 좋은 건 아니라는 신중론도 있다. 삼성증권 오현석 투자정보팀 이사는 “한국이 선진국지수에 들어가도 비중이 1~2%에 불과하다”며 “글로벌 운용사 입장에선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라 일부 운용사는 아예 한국 주식을 사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신흥국과 선진국지수 사이에서 ‘낙동강 오리알’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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