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정치위의 한국 문제 토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유엔」 정치위의 한국 문제 토의가 21일부터 시작됐다. 김 외무장관은 이 자리에서 기조 연설을 통해 북괴의 군사 도발과 공산 측 안의 평화 파괴적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휴전 체제의 보전, 항구적 안전 보장을 협의하기 위한 직접 당사자간 협상, 남북 대화의 무조건 재개를 촉구했다. 그러나 공산 측의 태도가 완강해 한국 문제 토의가 끝난 뒤 서방·공산당 측 결의안의 표 대결은 불가피할 것 같다.
그 동안의 분위기로 보아 표결을 할 경우 과연 「유엔」에서 전통적으로 우리가 누려왔던 압도적 우위를 지킬 수 있을는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일련의 국제 동향에 비추어 서방측에 대한 제3세계의 감정이 나빠졌을 가능성이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유엔」사회위의 「시오니즘」 규탄 결의안 통과가 바로 그러한 징조다.
이 결의안은 「모이니언」「유엔」 주재 미국 대사의 「아민」「우간다」 대통령 비난 발언으로 악화된 「아프리카」 국가들의 반미 감정을 배경으로 통과됐던 것이다. 우리에게 위협적인 요인은 그뿐이 아니다. 지난 8월 「리마」 비동맹 외상 회의에의 북괴 단독 가입·남북 월남의 「유엔」 가입 거부와 얽힌 두 차례의 한국 「유엔」 가입 안 부결도 결코 우리에게 유리한 사태라 할 순 없다. 「유엔」 운영위의 의제 채택 및 결의안 순서를 둘러싼 공산 측의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책동도 소홀히 넘길 일이 아니다. 공산 측의 집요한 책동으로 보아 그들은 공산 측 결의안의 선표결권을 확보해 공산 측 결의안을 통과시킨 뒤 서방측 결의안의 투표 봉쇄를 꾀하려는 듯하다.
물론 이러한 공산 측의 무모한 책동이 그대로 통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서방·공산 양측의 결의안이 모두 통과되는 기묘한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실제로는 「유엔」에서의 한국 문제 결의안의 처리가 어떻게되든 실질적인 영향이 미치진 않는다.
54년부터 70년까지 17차례나 통한 결의안이 「유엔」 총회에서 통과되었지만 조국의 통일은커녕 초보적 진전조차 이뤄지지 못했던 것이다.
이번에 또다시 서방측 결의안이 가결된다해서 휴전 협정 대체를 위한 직접 당사자간의 협상이 개시되리란 보장은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설혹 공산 측의 「유엔」 군사 해체·외국군 철수 결의 안 등이 통과된다 하더라도 「유엔」사나 주한미군의 지위가 변경될 턱도 없다.
최종적으로 안보리에서 결정된 「유엔」 군사 해체 문제가 상임이사국인 미국의 동의 없이 결정되지는 못한다. 더구나 한·미 양국의 주권에 속하는 주한미군의 문제는 총회거나 안보리거나를 막론하고 「유엔」이 용훼 할 일이 아니다. 이렇게 관련 강대국을 포함한 직접 당사자간의 합의가 없이는 「유엔」 총회 결의가 실제로 아무런 구속력이 없는 것이다. 여기에 직접 당사자간의 협의를 강조하는 서방측 결의안의 합리성이 있다.
30년 가까이 우리 국민은 「유엔」이 대한민국 수립에 산파역을 했고 북괴 남침 때 「유엔」군의 깃발을 제공한 역사 때문에 이 기구를 과대 평가해 왔다. 그렇지만 「유엔」 세계평화 유지와 분쟁위 평화적 해결 기능이 무력해진지는 이미 오래다.
이제 남은 것이 있다면 국제 협력과 국제 여론 환기 기능 정도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이제는 우리도 「유엔」이 마치 우리의 운명이나 좌우하는 듯한 미망에서 벗어나 우리의 입장을 설명하고 국제적 이해를 도무 하는 단순한 광장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일 때가 됐다.
그야 이왕이면 우리의 입장을 지지 받는 것이 좋겠지만 표결 결과에 너무 집착해 그 장소에서 우리의 정당한 입장을 떳떳이 밝히는 것조차 기피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반응은 어떻든 어디서나 우리는 우리의 정직한 입장을 주장하겠다는 원칙에 투철해야겠다는 것이다.
이제는 실제로 평화와 안정 그리고 번영이란 국가 목표 달성에 어떤 방안이 가장 유익하냐는 실질 논리가 과연 우리 외교의 행동 기준이 있었느냐를 반추할 때가 온 것이다. 외교 당국의 더 큰 책임과 분발이 요망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