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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국과 나』-서독에서 출판된 「사하로프」의 근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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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9월 서독서 출간된 『나의 조국과 나』 (「몰덴」 출판사)라는 저서에서 올해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 「사하로프」는 소련이 국내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위험은 전세계에 대한 위험이라고 지적하며 소련 사회의 과감한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다음은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한 서독 「슈피겔」지의 기사를 간추린 것이다. <편집자 주>

<화려한 전경 뒤의 그늘>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고층 건물 사잇길로 생의 기쁨을 만끽하며 생기 있게 활보하는 사람들을 「모스크바」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화려한 전경 뒤에는 외국인들 눈에 띄지 않는 풍경이 수두룩하다.
고뇌와 공포에 시달리며 나태와 실의 속에서 생활의 의지를 잃은 군상들이 수십년 동안 늘어나며 사회의 밑바닥을 뿌리째 갉아먹고 있다.
소련 안에는 운명에 속아 불행 속에 사는 동포들이 엄청나게 많다. 가소로울 정도로 쥐꼬리만한 연금을 받고 사는 고독한 노인들, 배울 기회도 못 갖고 일자리도 없어 발뻗고 잘만한 자그마한 공간을 갖지 못한 사람들, 「베드」가 모자라 병원에 못 가는 불치의 환자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술 주정꾼들, 1백50만명이 넘는 수인들, 맹목적이고 부당한 법 제도의 희생자들, 제때에 뇌물을 바칠 줄 몰라 당연히 누려야 할 생존권에서 소외된 인간들…. 이러한 불행한 현상을 현실적으로 시정하기란 불가능하다.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이 한편에서는 빵 한 조각을 얻기 위해 피나는 생존 투쟁에 허덕이고 있을 동안 일부 극소수 특권층은 배를 쓸어 내리는 이 현실, 조롱감이 되면서까지 쓸모 없어지는 사회 구조를 시정하려고 아무도 노력하지 않고 있다.
실의에 찬 인간들이 고관이나 고위 당 지도자들의 문전을 두드리며 생존권을 요구하다가 그 대부분이 문턱에서 쫓겨나 정신 병원으로 끌러가고 있다. 나는 내 조국 (소련)의 풍토와 문화, 그리고 동포들을 지극히 사랑한다. 불평 분자가 되려는 생각은 터럭만큼도 없다. 하지만 이러한 부정적인 현상에 눈을 돌려 우리 조국의 현상을 이해하고 이것이 국제적인 관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철저히 음미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생존을 위해 불가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단이 낳은 위약과 무능>
「소비에트」 사회와 소련 중심적 선전의 교조 중 소련의 정치·경제 제도가 다른 모든 나라들의 모범이 된다는 『유일성』에 입각한 「테제」가 오래 전부터 운위되어 오고 있다. 이 사회야말로 가장 정당하고 인간적이며 진보적인 제도로서 최고의 노동 생산성과 생활 수준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이 독단은 시행 착오를 거듭하고 약속을 이행 할 수 없는 무능을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더욱 끈덕지게 강조된다. 그러나 현실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소련이 세계에서 최고의 생산성을 기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의심할 나위 없다. 가까운 장래에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을 따라갈 전망도 없다.
우리가 지닌 것이라곤 경제의 끊임없는 군수화, 그것도 평화시대로서는 유례없을 정도로 높고 국민에게 무거운 부담을 주고 온 세계를 위험에 빠지게 할 규모의 군수화다. 우리가 지닌 것은 또 만성적인 경제적 불황, 자연 자원의 궁핍, 낮은 임금 등이다.
체제 안정을 위한 길은 완만하기는 하지만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는데 있다. 현 「브레즈네프」 지도부는 현재 이 나마의 경제 수준이 사실상 대부분 「흐루시초프」 정책으로부터 물려받아 이룩된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 연계성을 감추고 앞으로의 풍요한 「비전」만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전체주의 체제의 비만이 공포와 무위라는 타성을 가져온 사실이다. 단 한 세대 동안에 그토록 많은 희생을 치른 민족도 없다. 확성기는 날마다 국민이 국가의 지배자라고 무마하고 있지만 국가의 실제적인 지배자는 아침저녁으로 거리의 교통을 차단하고 방탄 장치가 된 검은 「리무진」에 앉아 달리는 인물들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선택 없는 선거 국민 조롱>
선거라는 것도 한 사람의 후보만 기재된 투표지에 찬반을 표시하는게 소련 사회다. 국민들은 이 『선택 없는 선거』가 자신의 지위를 정치적으로 어떻게 비하시키는지 알고 있다. 국민은 이 사치스러운 의식이 드러내 보여 주는 이성 및 인간적 품위에 대한 조롱을 감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국민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동물처럼 조련되고 스스로 훈련받도록 체념하고 있다. 소련이 이러한 영원한 위기 상황에서 헤어나고 온 인류가 직면한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내부 개혁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나는 다음과 같은 조치가 필연적이라고 생각한다.
▲1965년 실현의 초기 단계에서 수정된 경제 개발을 부활시켜 확대할 것. 즉 경제·생산분야에서의 경영자의 완전한 독립성을 보장할 것.
▲중공업·운수·체신 분야를 제외한 모든 경제·사회 활동 분야의 부분적인 단유화 해제. 특히 「서비스」업 부문의 점진적인 국유화 해제.
▲농업 분양에서의 집단 농장제의 점진적인 철폐와 개인 영농에 대한 국가적 지원.
▲모든 정치법의 석방, 사형 제도의 폐지 및 15년 이상의 수형자에 대한 사면.
▲노동쟁의의 자유를 위한 법 제정
▲사상·양심 정보의 자유를 보장하는 입법 조처.
▲주요 정책 결정을 공개하고 이의 공식적인 통제를 위한 법룰적인 보장.
▲소련방 각 공화국의 분리권에 대한 법률적 보장 및 이 문제에 관해 논의할 수 있는 자유 보장.

<혁명적 변혁은 위험>
▲외국 여행에 대한 자유 보장.
▲복수 정당제
소련 사회의 여러 가지 상황을 점차적으로 개선하고 근로 대중의 물질적 생활을 개선하며 자유·행복·선의의 도덕적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이러한 개혁은 필연적이라고 생각한다. 상실된 인문 가치를 회복하고 밀폐되고 전체주의적인 경찰 국가이기 때문에 대두된 여러 가지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서 이러한 개혁이 불가피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서 나는 진화론자이며 개혁주의자라는 사실을 밝히며 사회 질서의 폭력적인 혁명의 변혁의 반대자임을 확신을 갖고 강조하고자 한다. 급격한 사회 질서 변혁은 경제·법률 제도를 파멸로 이끌고 대중을 고통에 빠뜨리며 무법과 공포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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