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상의 후 피임 없이 성관계는 '약혼'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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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사이인 남녀가 장차 신혼집으로 살 아파트 구입 등을 구체적으로 상의한 직후 피임을 하지 않은 채 성관계를 가졌다면 사실상 ‘약혼’이 성립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고등학교 여교사였던 A씨는 2011년 3월부터 같은 학교 교사 B씨와 교제했다. B씨는 동료 교사들에게 A씨와의 교제 사실을 알리며 연애 조언이나 도움을 구하기도 했다. B씨는 2012년 1월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A씨와 상의했고, 그해 3월 ‘아파트 매수자금’이라며 대출금 3000만원이 입금된 통장을 보여주는 등 구체적인 내용을 A씨에게 알려줬다. 같은 달 A씨가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자 B씨는 꽃바구니와 선물을 A씨에게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B씨는 A씨 뿐 아니라 같은 동료 여교사 C씨와도 교제 중이었다.

그런데 A씨와 C씨가 재작년 비슷한 시기에 각각 B씨의 아이를 임신하면서 사달이 났다. 둘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B씨는 C씨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다. B씨는 A씨에게 “내가 간경화가 있어서 건강도 좋지 않고, 경제적으로 어렵다”며 임신 중절 수술을 하자고 설득했다. A씨는 이를 받아들여 낙태했다. 하지만 이후 B씨가 C씨와 결혼식을 올리고 그해 11월 아이까지 낳은 사실을 알게 되자 A씨와 그 부모는 B씨를 상대로 위자료 청구 소송을 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4단독 최정인 판사는 이 사건에서 “A씨에게 2000만원, A씨 부모에게 각 25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18일 밝혔다. 재판부는 “장차 신혼 집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아파트 구입을 상세히 알려준 후 피임없이 성관계를 가진 점 등을 보면 묵시적으로 약혼의 합의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노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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