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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에 숨은 인재 표면에 나설 때"|조계종 종정 서옹 스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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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최근 우리나라 불교계는 또 한차례의 시련을 겪고 있다. 최대의 불교종단인 조계종은 일련의 문제와 함께 총무원장을 비롯한 교무행정의 책임자들이 사퇴함으로써 그 진통은 절정에 이른 느낌이다. 그러나 종정인 서옹 스님은 27일 이른 아침 서울 상도동 백운암에서 기자와 만나 담담하게 당면한 문제들을 언급하면서 진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었다. 다음은 그「인터뷰」의 내용-.
-서옹 스님이 작년 7월 종정에서 추대돼 취임한 이래 실제 종단에서 겪은 절실한 문제는 어떤 것입니까?
『우리사회가 지금 그러하듯이 불교계도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산중에만 있다가 종단에 들어와 보니 오늘날 세상에 만연된 배금사상과 이기적 욕망에 집착하는 풍조가 의외로 많이 침범돼 있어요. 이제 불교계가 불법의 근본바탕으로 돌아가지 않고는 우리 민족의 정신적 지주도 될 수 없으며 불교계 안에 누적된 부조리도 제거하지 못합니다. 대 각성한 사람이 나와서 종단을 이끌어 가야 하는 전환기에 왔다고 생각합니다.』
-종단지도자의 자세라고 할까, 그런 문제에 관해서는….
『말함 것도 없이 근본 바탕에 입각해 물욕을 떠나서 자기 생활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불교계는 물론 국가사회를 정화하는 정신적 원천이 되려면 그 지도자는 확고한 신심, 철저한 공 심, 뭇 사람에 이익을 끼치는 자비심이 절대 필요합니다.
그런데 불교계 정화(동란 후에 일어난 전 사찰 비구 화를 말함)후 계속 진통을 겪느라고 그 동안 교육을 등한히 해 왔습니다.
따라서 종교인으로서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많아 졌지요. 금후로는 승려교육이 급선무입니다. 아무리 물질문명시대라 하지만 동양인이 지닌 높은 차원의 정신바탕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한다면 유혹에 이끌리거나 알력이 없고 모든 게 원만해질 것입니다.』
- 불교에 대한 사회적인 존경심이 점차 퇴색해 가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일조일석에는 어려운 일이지요. 그런 풍조는 이조 때의 불교탄압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상 종교적으로 차원 높은 고승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훌륭한 인재가 불문에 들어오기를 꺼린 것이지요. 그래서 밖으로는 탄압하고 안으로는 시원찮은 사람들이 사니까 교세는 자연 쇠잔하고 사회에선 우습게 여기는 풍조가 생긴 것이지요. 해방 후 종교탄압이 없고 자유신앙에 의해 좋아지진 했으나 역시 오랜 풍토를 일소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건 우선 승려자신에 책임이었겠으나 아직도 적잖은 제약을 주고 있는 정치인들에게도 공동으로 반성할 여지가 있습니다.』
-조계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어떤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숨어 있는 새 사람이 많이 나와서 일하도록 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사실 일제 때 대처승을 많이 만들어 사찰들을 맡겨 놓았습니다. 그들 중엔 교비로 면학케 한 사람이 적잖았던데 비하여 어쩐지 독신자들은 신식교육을 받을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불교정화운동으로 별안간 교체하게 되니까 막상 비구승은 수적으로 부족해 그때 시원찮은 사람들이 많이 흡수됐습니다. 그게 오늘날 부조리를 빚는 한 요인이 되고 있으므로 어서 훌륭한 사람을 골라 일하게 해야 합니다.』
-전국의 허다한 사찰들이 운영 난에 빠져 있는 것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습니다만 스님이 생각하시기에 타개할 길은 없겠습니까?
『과거 한국불교는 정책적으로 사회와 격리된 산중불교였습니다. 옛날에는 신도에 의존치 않더라도 농토에서 나오는 것 가지고 생활했지만 모두 남에게 맡겨 농사짓던 농토를 토지개혁으로 모두 잃어버린 것이지요. 그런 지난날의 지주 적 악습이 남아 있어서「놀고먹는 중」이란 손가락질을 면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승문 자체는 정신적이지만 요즘엔 일하는 사람이 꽤 늘어났는데 모두 숨어 있으니까 일반사회에서 잘 모를 따름입니다.
그리고 생활방식 그 자체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동양은 인간정신의 깊은 체험 면에서 서양보다 월등한 대신 그 생활과 행동에 논리성·조직성이 부족합니다. 다양화하는 시대이므로 서양 것을 배워 합리적인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불교재산의 활용이라고 하면「활용=처분」으로 여기는 경향이 농후했다고 생각됩니다만….
『지금까지 그런 경향이 많았습니다. 금후엔 팔아서 일시적으로 소비할 것이 아니라 생산적으로 연구개발해 활용할 방침입니다. 불교재산으로는 특히 산과 밭이 많으므로 가령 종단의 동국대학의 농림학과나 기타 전문교수들에게 자문해서 경제적 개발을 할 구상입니다.』
-각 사찰이나 종단에 있어 행정·강학·수도승의 구분이 미 분명하기 때문에 갖가지 그릇된 행정이 생기는 반면 수도승도 없다는 비난이 있습니다. 그것을「살림하는 스님」과 「불사를 집행하는 스님」으로 엄격히 분리한다던가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의도는 없습니까?
『내용상으로 다 있는데 지금 혼란기여서 어지러운 것이지요. 질서만 잡히면 저절로 자질에 따라 분명해지기 마련입니다.
바꿔 말하면 경제적으로나 입지적으로나 위치가 불안하니까 우왕좌왕하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사람은 공부하게 하고 포교하는 사람은 그에 전심하게 하고 나아가 단청하고 집 수리하는 기능 자에 이르기까지 뒷받침을 잘해 준다면 우선 먹고살겠다고 딴 짓 하지 않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하는 일을 규정해 버리는 제도가 따로 필요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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