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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민석의 시시각각

안상수, 우근민, 원희룡의 유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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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석
강민석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민석
정치부 부장대우

말발론 동급 최강인 유시민과 김민석이다. 두 사람이 4년 전 설전을 벌였다.

 “대구 머스마란 걸 보여 주겠다더니 서울시장을 검토하다 경기도지사로 옮겼다. 머스마 맞나.”(김민석, 당시 민주당)

 “민주당 희망사항(수도권 불출마) 안 들어 줬다고 화를 내나.”(유시민, 당시 국민참여당)

 서울시장에서 경기도지사로의 급선회. 2010년 지방선거 땐 제법 뜨거웠던 ‘유턴(U-turn) 정치’ 논란이다. 이번엔 새누리당에 이와 유사한 사례가 넘친다. 사지(死地)보다 양지로 향하다 보니 무리가 생긴다.

 #1. 경남지사 출마설이 지역 관가에 쫙 퍼졌던 안상수 전 한나라당 대표. 얼마 전 핸들을 급히 꺾었다. 창원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경남지사론 박완수 현 창원시장의 손을 들어 줬다. 홍준표 지사가 한 방 먹었다. 하지만 안-박 연대(홍 지사는 ‘보온병 연대’라고 부르는)의 파괴력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홍 지사의 지지율이 아직은 가장 높다.

 여당 대표를 지낸 사람이 기초단체로 하향하는 게 격에 맞느냐는 논란은 둘째고, 안상수 창원시장-홍준표 경남지사의 상황을 예상해 보자. 홍 지사가 시장·군수회의를 주재하는 경우다. 여덟 살 아래 홍 지사는 상석에 앉아 안 시장의 업무보고를 받아야 한다. 안 시장이 자기 아래 있던 홍 지사에게 보고하는 장면. 보는 사람들이 민망할 텐데 안 시장은 감내할 수 있을까. 시장 업무는, 앙숙인 홍 지사가 ‘보온병 시장’ 대접 안 하고 화끈하게 잘 밀어 줄까. 굴욕적 순간이 와도 누굴 원망할 순 없다. 상황을 자초한 건 기습적으로 유턴한 자신이다.

 #2. 한 달 전쯤 원희룡 전 의원이 TV에 나와 말했다. “출마는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

 그러나 결국 제주지사 출마를 선언했다. 무소속에서 새누리당으로 먼저 유턴한 우근민 현 지사가 붕 떴다. 1만7000명을 이끌고 와서 과시성 세몰이 입당쇼까지 벌였으나 우습게 됐다.

 ‘그 정도면 분명히 출마 안 한다는 말인데 설마…’ 했다면 우 지사는 분명 정치적 상상력이 빈곤한 사람이다. 믿은 게 죄냐고? 사실 죄야 무슨 죄가 있나. 정치권 말은 거꾸로 들어야 함을 몰랐던 ‘사람’이 문제지.

 출마 안 하려던 사람이 출마하는 것은 그럴 수 있다 쳐도 당이 경선룰을 특정인의 편의에 맞춰 주는 건 뭔가. 제주도만 여론조사 하나로 후보를 정한다니, 이게 상향식 개혁 공천? 지도부가 낙점하는 전략공천을 할 때도 여론조사는 기본이고 도덕성·자질 등의 여러 항목을 체크한다. 그런 전략공천만도 못하다.

 ‘원희룡의 유턴’은 경선룰의 퇴행을 몰고 왔다. 열 받은 우 지사는 무소속 출마를 고민하고 있다. 곧 블랙코미디를 찍을지 모른다.

 1991년(27~36대) 이후 제주지사는 우근민-우근민-신구범-김문탁-신구범-신구범(초대 민선, 무소속)-우근민(민주)-우근민(민주)-김태환-우근민(무소속)이다. 두어 번 빼놓고 20년 이상 우근민-신구범이다.

 그사이 우 지사는 여→야→무소속→여를 전전했다. 유턴에 유턴을 하다 보니 궤적이 타원형이다. 리즈 테일러도 아니면서 웬 편력(遍歷)이 이리 현란한지.

 신구범 전 지사는 우 지사와 반대길만 가다 보니 무소속·한나라당을 거쳐 안철수 진영에까지 도달했다. 하지만 야권 통합 신당이 뜨는 바람에 설 자리가 없어졌다. 무소속으로 돌아가야 할지 모른다. 서로 반목하던 우근민-신구범이 이젠 동반탈당·동병상련(同病相憐)할 수도 있다.

 애초 새누리당이 우 지사를 받은 이유가 궁금하다. 20년 지역패권에 편승해 쉽게 이겨 보려고? 아니면 논문표절로 출당한 문대성 의원이 안철수 신당에 갈까 봐 다시 데려오는 것과 같은 이유?

 새누리당의 제주와 경남에선 정치 상도의(商道義)가 사라졌다. 새 정치에 맞서려면 ‘큰 정치’를 해야 한다. 달면 남이 못 먹게 아무거나 삼키고, 쓰면 아무 데나 뱉는 건 큰 정치가 아니다.

강민석 정치부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