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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로 눈 돌린「키신저」외교|서울-평양-북경간 왕복외교 실현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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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워싱턴=김영희 특파원】22일「유엔」에서의「키신저」제의는 인지공산화이후 5개월만에 미국이 호전되었다고 판단하고 있는「아시아」의 새로운「상황」의 산물이다.
「키신저」제의를 구주·중동·「아시아」전체를 망라하는 관점에서 보면「헬싱키」선언과「시나이」협정의 연장선 위에 있는「키신저」외교의 동 진이고 시기적으로 월남협상까지 소급해 볼 때 그것은「키신저」외교의「아시아」복귀이기도하다.
「키신저」제의를 한반도에 국한시켜 놓고 보면 그것은 한국휴전 20년만에 나오는 제2차 평화제의라고도 할 수 있다.
「아시아」라는 중간무대에서「키신저」제의를 평가한다면 그것은 인지패퇴로 미국이 잃었던 외교적 주도권을 최초로 다시 행사하는 하나의 전환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인지이후 미국은「아시아」정책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고작 해서 인지에서 입은 상처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지난 6월과 7월 태국의 대 중공외교관계수립과 미군기지철수요구 및「필리핀」의 중공·월맹과의 외교관계재개와 대미기지협정개정요구로 미국이 입은 위신상의 타격은 심각했고, 인지는 일반적인 예상대로「아시아」의 세력균형을 이 지역의 공산진영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뒤집어 놓았다고 판단된다.
이에 미국은 동북「아시아」에서는 전술핵무기사용과 9일 전쟁 같은 극한 용어를 총동원하여 북괴의 모험적 충동을 누르는 한편 동남「아시아」에서는 인지와「싱가포르」의 옷자락을 붙들고 미국의 방위선을「말라카」해협까지 후퇴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인지 공산화에서 5개월이 지난 지금 동남아에서는 북경과「모스크바」그리고「하노이」의 세 권력중심부가 형성되어 삼각관계의 패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캄란」만에 소련의 해군기지가 들어선다는 소문은 중공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고, 중공·월맹간의 해묵은 반목이 부활함과 함께「모스크바」「하노이」공동전선이 북경의 세력팽창을 견제하는 양상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동북아에서는 중-소 분쟁에서 북괴가 중립을 지키는데 대해 중공과 소련 모두가 반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반면 소련이 북괴에 무기를 제공하고 그대가로 북괴는 중공과의 접경지역에 소련의 군사기지를 제공한다는 소문에 중공은 극도로 긴장하고 있다는 보도가 줄곧 나돈다.
「키신저」장관의 제의와 직접관계가 있는 것으로는 주한미군에 관한 소련과 중공간의 격론이다.「모스크바」방송이 지난 8월『중공은「아시아」지역 국가들에 대한 외부세력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미국의 군사적인 존재가 필수적이라고 말한다』고 꼬집었다. 북경의 인민일보는 그 말을 받아서『옆 걸음 질을 하는 게가 다른 게를 보고 옆 걸음 질 한다고 흉본다』고「모스크바」를 공박했다.
이런「아시아」공산권의 집안싸움이「키신저」제의를 낳은 상황이다.
「키신저」는 한편으로는 중-소 분쟁을 이용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 분쟁이 한반도에서 극도로 악화하여 한국문제 해결에 결정적인 장애요소가 될 것을 걱정하고 있다고 해석되기도 한다.「키신저」제의가 1차적으로 한국·미국·중공·북괴의 4자 회의, 다음 단계로 소련과 일본까지 참가하는 확대회의로 짜여 있는 것은「유엔」사령부를 대신할 대체체제를 마련하는 회의가 중-소 분쟁으로 유산되지 않도록 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키신저」제의는 인지패배이후 미행정부가 재검토한 것으로 알려진 새로운 한국정책의 방향을 의미하기도 한다.
「키신저」국무장관은 73년 9월 상원 외교 위 증언에서 벌써 미국의 외교적 노력과 한국의 자위능력의 성장으로 5년 내지 10년 안에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한바 있으나 인지비극으로 그런 전망이 한동안 주춤했었다.
그러나 지난 8월 박대통령이「뉴요크·타임스」지와의 회견에서 앞으로 4∼5년이면 주한미군의 철수가 가능할 만큼 한국의 자주국방능력이 갖추어질 것이라고 말했고,「슐레진저」미 국방장관 역시 한-미 안보회의 때 비슷한 기한을 게시하고 그런 목표를 위해서 한국군의 현대화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대통령과「슐레진저」장관의 미군철수에 관한 그런 발언 역시「키신저」장관의 제의의 배경을 이룬다고 보는 것이 옮다.
「뉴요크·타임스」사설은 23일「키신저」장관 제의를『현명한 구상』이라고 부르고, 북괴와 그 맹 방은 이와 같은 구상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만약 공산 측이 이「뉴요크·타임스」사설의 이 같은 촉구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이번에는 서울과 평양·북경 사이에서「키신저」의 유명한 왕복외교가 전개될 판이다.
그러나 미국은 북괴가「키신저」제의를 거부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중공이 다른 입장을 택할 수 없을 것으로 본다고「월·스트리트·저널」이 23일 재빨리 전망했다. 「키신저」장관의 협상방식은 복잡한 문제는 우선『개념적인 타결』부터 보고 난 뒤 세부문제를 하나하나 협상해 나가는 것이다.
한국문제에서도 그런 방식을 따르겠지만 4자 국제회의가 소집될 전망조차 단기적으로는 흐리다. 「키신저」제안이 북경과「모스크바」방문을 앞두고 나와서 주목을 끌고는 있다. 그러나 북괴가 소련과 중공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이상 소련이나 중공이 상대방을 앞질러서 북괴가 원치 않는 회의참가를 강요할 처지가 아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문제해결에 미치는 중-소 분쟁의 부정적 요인이다.
「키신저」구상이 현상 고정을 의미하고 북괴의 지금까지의 주장은 현상타파라고 되어 있지만「7·4공동성명」의 경험으로 보면 남북한이 서로 편한 대로 한쪽은 현상 고정이라고 말하고 다른 쪽은 현상타파라고 해석할 수 있는 어떤 타협점을 찾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키신저」제안은 전제하고 있는 것 같다.
만약「키신저」제안이 희망적인 요소들을 배제한 것이라면 그 제안은 외교적인 주도권을 잡아 선전상의 득점을 따고 이번「유엔」총회에서 한국문제 결의안의 타당성을 역설하는데 유력한 무기로 이용될 수 있을 뿐일 것이다.
그러나「키신저」의 예상대로 미-소 긴장완화가 더욱 진행되고,「포드」대통령의 북경방문으로 상해성명이 정말로 실천에 옮겨지고, 일본이 중공 및 소련과 평화조약을 체결하는 단계까지 주변정세가 호조 되면 북괴가 받는 압력은 견디기 어려운 정도로까지 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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