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씻어야 할 대중의 불신|미「찰즈·시브」<워싱턴·포스트 부주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닉슨」이「워싱턴」정가에서 사라진지도 1년,「포드」대통령이 이제 행정부를 확고하게 관장하고 있다. 그러나「워터게이트」사건의 여파는 계속 술렁이고 있으며 그 현상이 가장 두드러진 분야가 바로 미국언론이다. 「워터게이트」추문의 추적·고발과정은 미국 「저널리즘」의 새 시대를 획 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활자매체(신문·잡지), 전자매체(TV·라디오)할 것 없이 미국언론은 이 기막힌「드라마」의 전개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언론은 관리들의 끈질긴 시도를 무릅쓰고 백악관의 월권행위와 그 은폐공작을 폭로했던 것이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미국언론이 미국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제 미국언론은 이와 같이 증명된 자신의 힘이 수반하는 책임과 의무에 충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흔히 언론은 행정·사법·입법부 다음가는 제4부로 칭해지고 있다.

<전기이룬 워터게이트>
이는 좀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자유로운 언론 없이 미 국민이 향유하고 있는 현 사회체제가 지금의 형태로 계속 유지될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조금도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최소한 「워터게이트」사건은 이점을 명백히 해주었다. 오늘의 미국은 이 같이 헌법으로 보장된 자유로운 언론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언론의 힘은 동시에 어려운 질문을 제기하고 있으며 언론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지금 느리기는 하지만 조심스러운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그 질문이란 이처럼 자유롭고 강력한 사회적 기관이 책임감 있고 정직하고 또 공정하게 활동하도록 그 사회가 보장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한다면 언론기관은 대중의 혐오감이나 불신과 언론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자만심과 오만이라는 두 가지 함정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다.
전통적으로 언론은 봉사의 대상인 대중에 대해 고고한 자세를 취해 왔다. 사실 언론이 부여받고 있는 헌법상의 보호 때문에 언론은 반 공공적인 기관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언론은 다른 공공기관을 면밀한 검토와 보도대상으로 삼으면서 그 자체의 내부를 노출시키는데는 지극히 인색했다. 간혹 실수를 범했을 때 이를 스스로 인정하는데는 인색했다. 언론은 보도의 동기와 방법을 독자들에게 솔직히 설명해 주지 않았다. 겉으로는 전지전능한 듯한 체 하지만 대중은 그걸 역겹게 생각하고 있다. 그 결과 미국 내에서는 상당히 큰 대 언론 불신감이 쌓여 있다.
비록「워터게이트」사건에 대한 폭로기사들이 대부분 사실과 부합되는 것임이 증명되기는 했지만 많은 국민들은 언론이 무절제하다는「애그뉴」의 비판이 일리 있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러한 불신감은 현재 미국사회에 내재해 있는 긴장감으로 더욱 악화되고 있다.
한편에서는「닉슨」을 넘어뜨린 언론이 기고만장하여 미국내의 모든 제도를 거꾸러뜨리려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반대로 언론은 사회지배 계층의 시종이기 때문에 그 계층의 이익이 위협을 받는 경우에는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측도 있다.
이 중간에 있는 대부분의 국민들은 언론을 전적으로 신임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불안감을 가지면서도 언론이 제공하는「뉴스」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인들 사이에는 이 같은 비난에 대처하는 하나의 방법은 대중에 대해 한층 공개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자체내부 노출엔 인색>
가령 오보를 하면 그 기사와 거의 같은 비중으로 오보임을 솔직하고 공개적으로 시인함으로써 신문을 보다 재미있고 자극성 있게 만들려는 유혹에 저항한다.
또 기사가 불공정하게 다뤄졌다고 생각하는 개인이나 단체에 대해 항의할 기회를 충분히 주고 기사가치를 보다 정확히 평가하여 대중의 요구에 대처토록 한다. 신문독자나 TV 또는 「라디오」시청자를 단순한 고객으로서가 아니고 진실과 공익에 봉사하는 같은「파트너」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언론이 공개성에 접근하는 방법은 많이 있다. 어떤 신문들은 불평을 다루는 민원 조사 관의 자세로 공정·정확하고 균형 있게 독자를 대변하고 어떤 TV방송국은 자기네 편집 진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을 보도하기도 한다. 모든 국내「뉴스」를「모니터」하는 전국「뉴스」회의가 운용되고 있으며 많은 주와 지방에서도 지역「뉴스」회의가 설치돼 있다.
이 모든 노력의 목적은 하나다. 즉「뉴스」를「모니터」하고 확인하는 일을 관의 통제 없이 스스로 책임 있게 수행하려는 것이다.
미국신문을 괴롭히는 다른 문제들도 많은데 그 중의 하나가 경제적인 문제다.
「인플레」와 경기침체가 겹친 오늘날 몇몇 신문들은 수입보다 비용이 훨씬 빨리 상승하기 때문에 경제적 궁핍을 강요받고 도산의 위기에까지 처해 있다.「워싱턴」을 예로 든다면 이곳엔 두 개의 신문밖에 없고 그것도 모두 고급지지만 그 중의 하나는 자금이 달려 존속 자체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심각한 상태에 있다.

<통제 없는 자율규제를>
사람들은 우리시대의 문화의 급변에 그 원인이 있다고 지적한다. 여러 세대동안 신문은 「뉴스」의 제1공급자였다. 그러나 최근 수년동안에 양상은 바꾸어졌다. 지금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중요한 사건의 첫 보도를, 때로는 그들의 모든 정보를「텔레비전」에서 얻어듣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신문의 역할에 있어서의 변화를 강요하고 있지만 신문은 여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에 대한 위협이 상존하고 있고 언론은 이를 예의 경계하고 있다. 언론이 비밀정보의「소스」를 밝혀야 한다는 요구도 있고 발행권에 대한 법적 제한도 있으며 관리들은 국민들이 마땅히 알아야 할 정보를 숨기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비록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고 하더라도 신문이 대중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신문이 대중의 신뢰를 얻을 때라야만 신문은 「워터게이트」사건이란 상처를 경험하면서까지 건국 후 2백년 동안 원만히 지내 온 미국의 정부체제에서의 기본적 요소라는 신문의 역할을 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