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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여울|유홍열 박사(성균관대 대학총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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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요즈음 우리 주변에는 패가망국의 원인인 사치풍조가 만연되고 있어 뜻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사치란 어떤 사람이나 자기신분에 맞지 않을 정도의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황금·보석 등의 장신구를 지니고 다니며 진미의 음식을 찾아다니면서 입맛을 돋우며 호화로운 주택에서 외래품을 사용하면서 살며 고급자동차에 몸을 싣고 달리며 거드럭거리는 생활양상을 뜻한다.
이러한 우리 주변의 사치풍조는 격변하는 세태에 편승하여 갑자기 권력을 잡았거나 치부하게 된 권력 부유층 일부의 몰지각한 향락행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저 천년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로마」대제국도 오늘날「로마」에 남아있는「카라칼라」욕장의 유속에서 엿볼 수 있듯이 호화로운 궁전의 욕실에서 우유로 목욕을 하고 주지 육림 속에 방탕한 향락생활을 즐기던 끝에 결국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던 것이니 이와 비슷한 사치풍조가 우리나라에서도 유행되는 것 같아 등골이 오싹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렇듯이 사치풍조의 유행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작게는 하나의 집안을 패망의 길로 끌어들이는 원인이 될 뿐 아니라 크게는 하나의 나라를 또한 그러한 길로 빠뜨리는 큰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사치생활은 외래품을 상용함으로써 한 집안의 재산을 낭비하고 방만한 향락생활을 수반할 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귀중한 외화를 소모하고 국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래로 위대한 흡속을 남긴 위정자들은 몸소 검소한 의식주의 생활을 실천함으로써 국민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한편 국민들의 사치풍조를 없이하는 일에 온갖 힘을 기울였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검소한 생활로 국민에게 모범을 보인 위정자를 청백리라고 불러 길이 추앙해왔다.
그러한 청백리의 대표적 인물로 유관(관)을 들 수 있다. 유관은 이조의 제4대왕이던 세종조에 있어서 부수상격인 우의정이라는 높은 벼슬을 살면서도 동대문밖에 있던 초가에서 비가 내릴 때에는 우산을 받치고 지낼 정도로 청렴결백한 위정자의 모범을 보였던 것이다.
이러한 청백리들의 봉사로 세종 조에는 국력이 크게 확충되어 여진족·왜족을 토벌함으로써 국위를 선양하고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등 민족문화의 창달을 가져오게 되었었다. 그리고 임진왜란이 일어날 것을 8년 전에 예언했던 율곡 이이도 몸소 검소한 생활의 모범을 보이며『사치는 망국의 근원』이라고 주장하여 이러한 풍조를 없이 하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서거하였는데 그의 집에는 수의조차 지을 가재가 없었었다.
끝으로 고대「로마」시대에 있어서 성행하고 있던 사치풍조를 없이하는 일에 큰 교훈을 준 귀족부인「고르네리아」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고르네리아」여인은 l백20년 동안 싸웠던「카르타고」의 군대를 마지막으로 격멸하여「로마」의 영토를「아프리카」대륙에까지 확장시킨「로마」국의 명장「스키피오」의 딸로서「그라쿠스」형제라는 두 아들을 두고있었다.
그리하여「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로마」귀족의 부인들은 신 외지로부터 얻어들인 진기한 보석을 가지고 집을 바꾸어가면서 날마다 자랑을 일삼고 있었는데 차례에 따라 그 집에서 귀부인들을 모시게 됐다.
「고르네리아」부인은 보석 대신으로 그 두 아들을 불러다 놓고『나에게는 이 두 아기들이 가장 귀중한 보물이다』고 말함으로써 자리를 같이 하고 있던 귀부인들의 얼굴을 붉히게 했다.
이러한「고르네리아」여인의 건전한 생활태도로 말미암아 그의 두 아들들은 후일 빈민을 두호하는 호민관이 되어「로마」국의 발전을 가져오게 하였었다. 오늘의 우리 현실에서 위협이 고조되고 있는 이때 요구되는 인물은 유관·이이 같은 청백리와「고르네리아」여인과 같은 현명한 주부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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