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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병영사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최근 전향한 북한의 한 소년병이 기자회견을 했다. 북한실태에 관한 일문일답을 보면 숨이 막힐 것 같다.
북한주민의 일상은 정치학습·군사훈련·강제노동의 나날이다. 그 어느 한구석 빈틈없이 그것은 시계바늘처럼 그들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정치학습은 이른바 사상의 획일화를 강요하기 위한 것이다. 군사훈련은 사회구조의 병영화를 위한 조치다. 강제노동과 함께 이들은 병영사회를 지탱해주는 삼대지주나 다름없다. 따라서 그 어느 일각이 허술해도 당장 그 사회는 위협을 받는다.
북한에는 학생의 의무노동제라는 것이 있다. 중학교이상의 학생들은 1년에 적어도 60일 이상의 의무노동을 해야한다. 그밖에도 각 학교별로 실습노동일수가 따로 정해져 있다. 대학입학시험자격에도 우선적인 조건으로 노동경력을 제시해야한다. 2년 이상의「순 현장직장노동」의 경력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말하자면 학교교육은 견습공을 양성하는 하나의 노동장인 셈이다.
이들의 조직도 군대의 영내생활에서 볼 수 있는 방식 그대로다. 그것은 개인의 한계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모든 것을 집단화하는 데에 뜻이 있다. 이탈이나 자주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가령 북한의 전 가구는「오호 담당제」에 매달려 있다. 모든 가구를 다섯 호씩 나누어 열성당원 1명이 이들의 가정 생활 일체를 지도한다. 그 지도의 내용은 생산에서 가정생활에 이르기까지, 성인에서 아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문을 포괄한다.
이들은 직장의 작업반장이나 직업동맹과도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노동이나 근무성적이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 「5호 담당제」에 보고되어 가정학습을 받아야 한다. 그것은『가정을 혁명화하는 일에서 시작해 분조와 직장과 이를 혁명화 해야한다』는 사회정책의 일환이기도 하다.
작년부터는『책 들고 다니기 운동』이 시작되었다. 김일성의 어록을 언제나 휴대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생산부문에서도『열 걸음 운동』이 시작되었다. 남이 한 걸음 걸을 때, 열 걸음을 걸으라는 이른바 속도전의 하나다.
북한은 이처럼 생산·조직·의식의 면에서 모든 사람을 기계의 한 부품으로 전락시키는 데에 거의 완벽한 방법을 동원하고있다.
전향한 소년병의 말투에서도 벌써 우리는 그런 숨막히는 사회의 전율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필경 북한의 전후세대들이란 대체로 그런 규격인간인 것 같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그런 사회를 매도하는데 누구보다도 뒤지지 않는 것은 그들 전후세대들 자신일 것 같다. 전향소년의 경우는 바로 그 좋은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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