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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드라머」와 생활의 진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텔리비젼·드라머」의 건전성에 관한 논의가 요즘 새삼스럽게 대두되고 있다.
극렬 잔악한 범죄가 날로 창궐하고, 퇴폐적인 풍조가 빚어내는 갖가지 문제들이 매일처럼 사회를 어지럽게 만들고 있는 작금의 상황 속에서 TV「드라머」의 건실화를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져가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TV수상기 「세트」가 이미 2백만대에 육박한다는 비공식 집계에 따를 것도 없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대중문화는 TV문화에 의해 대표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텔리비젼」 방송「프로」가운데서도 「드라머」는 대중들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시청자들은 안방극장에서 「드라머」의 이야기 진행에 함께 울고 웃으며 걱정하고 즐거워한다. 이리하여 어떤 때는 시청자들이 「드라머」의 얘기와 시청자 자신의 현실을 혼동하며 출연배우를 그 자신의 분신인양 사랑하고 미워하기도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TV「드라머」는 이런 시청자의 인기를 더욱 끌기 위해 눈에 안 보이는 대중에게 영합하는 경쟁을 벌이는 듯 하다.
그리하여 대중은 자칫 남녀간의 비속한 사랑의 이야기를 즐기며, 호화스런 장식과 기가 질리는 「드러매틱」한 사건에 끌린다는 미신이 지배하게 되었다.
말초신경만 건드리는 저속한 오락성을 극중에 담아야만 비로소 시청자들의 인기를 모을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착각이 이래서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은 그런 호화로운 「세팅」이나 도구, 황당무계한 비현실적인 이야기의 전개에 식상한 시청자들은 더 이상 거기에 현혹되지 않는다.
일상적인 생활이 존중되고 현실감이 있는 「드라머」가 시청자들에겐 더욱 친근한 것이며 참으로 오락적이기도 하다.
자기의 삶과 연결되지 않는 구름 잡는 이야기는 거리감을 줄 수밖에 없으며 불쾌감이나 저항감마저 가져다주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요즘 시청자의 대부분은 허울만 좋은 영웅들에게서 배신을 당한지 이미 오래며 그래서 그들은 실상 서민의 애환을 함께 할 수 있는 흐뭇한 이야기, 생활감각을 같이 할 수 있는 소시민적인 가정의 생활 이야기를 보다 즐기고 있는 것이다.
실상 우리의 시청자들도 이제는 허구적으로 만들어진 「저속한 오락성」이라든가 지나치게 「사실을 왜곡하는 오락성·목적성」에는 퍽 냉담하다는 것이 여러 조사결과를 통해 분명히 밝혀지고 있다.
그래서 화면에서 생활의 현실과는 관계없이 어처구니없는 딴 세계의 인물들이 노는 것을 들여다 보게된 시청자들은 가끔 분격도하고 고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생활의 진실」은 역사물·시대물이라고 예외일 수가 없는 것이다.
어느 시대고 사회성을 뚜렷이 하고 생활의 본질을 살린 작품은 바로 현실적이며 참된 것이며 예술적인 것이다.
이제 「텔리비젼·스크린」을 통해 안방에 뛰어든 생활 예술의 무대인 TV「드라머」는 그 때문에 생활의 진실을 생명으로 삼지 않으면 대중의 버림을 받게될 운명에 있는 것이다.
도시화되고 경직화된 교육성이나 목적성이 아니라 오늘의 삶을 더욱 값지게 하고 생기있게 키우는 극적 예술성이 중요한 것이다.
서민의 일상 생활 속에는 무진장한 생명의 진실이 있다. 그 진실을 추구하는 작가·연출자·연기자들의 진지한 노력이 기대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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