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국문제 「유엔」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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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30차「유엔」총회의 한국문제 처리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서만 공산 양측 결의안의 단일화를 모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한다.
원칙적으로 한국문제에 관해 동서진영이 타협만 할 수 있다면 이는 바람직한 일이다. 남북한이 한반도 문제를 놓고 「유엔」에서 경쟁을 벌이는 것보다는「유엔」에서 한국 문제를 떼어 내거나, 조용한 타협을 할 수 있는 풍토가 아쉽다.
사실 이제「유엔」이 한국의 통일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는 생각은 환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68년부터 점진적으로 한국문제를 「유엔」의 테두리 밖으로 떼어 내려는 우리 정부의 정책 추구는 이러한 인식에 바탕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노력은 북괴의 공세로 뜻대로 수행되지 못했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문제에 관해 동서간의 타협을 모색하려는 일본 정부의 시도는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여지가 있다.
다만 현실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데 문제가 있다. 이러한 타협의 시도는 선행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조용히 신중하게 진행되어야할 성질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러한 시도 자체가 우리의 열세로 오해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미 73년 28차 총회에서 동서간엔 타협이 이루어진 적이 있다. 당시「컨센서스」결의가 이뤄진데는 양측 결의안이 모두「언커크」해체라는 실질적 공통요소를 가진데다 최종득표 상황이 서방측에 유리했다는 배경이 있었다. 그리고 당시의 최종 막후교섭은 최후 순간까지 비밀리에 진행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73년과 비교해 지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유엔」에 제출된 동서양측 결의안을 비교하면 타협의 대상이 될 공통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유엔」군사 해체의 문제가 바로 그러한 것이다.
다만 서방측이 휴전협정의 유지를 위한 당사자간의 협의를「유엔」사 해체의 전제로 한 것인데 반하여 공산 측은 무조건 해체를 내세우면서 사후적으로 휴전 협정을 평화 협정으로 대체하도록「휴전 협정 당사자」들에게 촉구하고 있다.
아마 이 정도의 문젯점은 성의만 있다면 극복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북괴가 형식논리로 국면을 호도하고 있는 이상 타협의 여지가 있을지 의심스럽다.
공산 측은 소위 평화협정의 체결을 운위하면서 그 당사자에서 마저 의식적으로 한국을 제외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북괴가 비동맹 회의에 단독 가입한 지금의 상황에서 공산 측이 타협안에 흥미를 느낄 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작년 총회에서 44대44가 부동수로 그들 결의안이 부결된 만큼 지금 북괴는 금년 총회에서 공산 측안이 사상 최초로 통과되리란 환상에 젖어있을 것이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승산을 기대하는 한 타협에 응하리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그러므로 지금은 타협 가능성을 모색할 때가 아니라 더 한층 우리 지지표의 확보에 노력을 기울일 때다.
일본 정부가「유엔」에서의 한국 문제에 대한 동·서간 대화와 타협을, 진정 원한다면 우선 서방측 결의안의 득표에 외교 노력을 기울여줘야 할 것이다.
서방측이 다수표를 확보하여 공산 측 결의안의 패배가 확실시될 때라야만 타협의 길은 열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유엔」에서의 한국문제 토의도 형식논리를 벗어나 분쟁방지와 평화정착에 어떤 방안이 더 유익하냐 하는 실질논리가 중시되어야겠다.
장기적으로 동서간의 타협도 모색되어야겠지만 우선은 상대의 기선을 제하기 위해 유연성 있는 새 방안과 제안의 보완으로 지지표를 확보하는데 주력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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