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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도 저주도 않습니다 용기 갖고 자수해 주십시오|″귀하의 망설임은 수많은 사람에 괴로움 주는 다른 죄악을 낳습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조금도 원망하거나 저주하지 않고 용서하렵니다. 이토록 고통스런 비극을 불러온 죄인은 자식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이 어미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귀하의 망설임 때문에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의심과 괴로움을 받아야 하고 다정하던 이웃사이에 서로 불신하는 또 다른 죄악이 번지고 있지 않습니까.』-5살 짜리 아들 승재군을 졸지에 잃고 실의에 빠져있는 어머니 박정자씨(32·서울 서대문구 갈현동300의83)는 사건발생 3개월 째인 22일 범인의 자수를 호소하는 애절한 사연을 적어 본사에 보내왔다.
박씨는 눈물자국이 얼룩진 이 편지에서『낮에는 승재군이 골목길에서 놀다 종종걸음으로 마당으로 뛰어들어서는 것만 같은 환상에 사로잡혀 일손을 잡지 못하고 밤에는 승재가 옆에 누워 새근새근 잠들고 있는 것 같아 몇 번씩이나 문득문득 놀라 깬다』고 아들을 잃은 모정의 안타까움을 또박또박 적었다.
박씨는『인간은 누구나 착하지만 과오를 저지를 수도 있는 것이 인간이 아니겠느냐』고 적고『그러나 죄를 지었을 때는 바로 회개하고 법의 심판을 받으면 용서받을 수 있다』고 범인이 회개하기를 간절히 호소했다.
이 편지에서 박씨는 자신과 가족들에게 엄청난 슬픔을 안겨준 범인을「귀하」라고 부르며『귀하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지만 귀하도 언젠가는 자식을 갖게될 것이고 이미 자녀를 가진 분일지도 모르겠어요.
자식을 가진 부모의 마음은 귀하나 저나 마찬가지가 아니겠어요. 지금 슬픔으로 터질 것 같은 저의 가슴은 귀하가 어른의 세계가 무엇인지 조차도 모르는 승재의 목숨을 앗아가야 했던 연유라도 알고싶어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고 적었다.
수사가 시작되면서 많은 이웃사람이 불안과 고통을 당한데 대해 무거운 죄책감까지 짊어지게 된 박씨는『귀하 한사람이 수많은 사람에게 안겨준 괴로움은 순간적인 착각이나 실수로 인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혼자서 고민하면서 끝까지 은폐하려 한다면 귀하는 더 큰 죄악으로 빠져들게 된다』고 쓰고『지금이라도 용기와 지혜를 가지고 자수해달라』고 호소했다.
박씨는 또『언젠가는 귀하의 마음속에 있는 착한 양심의 소리가 죄를 숨기려는 나쁜 마음을 이겨낼 것을 확신해요. 하나님은 항상 당신과 함께 있고 당신을 채찍질하고 계실 테니까요』라고 범인의 양심에 호소했다.
마지막으로 박씨는 범인이 자수하면 관계 당국에 관대한 처벌을 진정하는 등 앞장서서 노력할 것도 다짐하고 있었다.
박씨는 유난히 무더운 올 여름, 피서는 커녕 외출도 거의 않으면서 수사상황을 지켜보면서 나날을 보내고있다고 했다.
박씨는 맏아들 명재군(6)이『승재는 하늘나라「풀」에서 물장구 칠텐데 우리는 왜 물놀이 안가는 거야』며 보챌 때 남모르는 설움에 복받쳐 일이 손에 안 잡힌다고 했다.
유난히 수박을 좋아했던 승재군은 집밖에서 개구쟁이처럼 놀다가도 수박장사만 지나가면 고사리 손으로 한아름 안고 들어가 자르기도 전에 허겁지겁 먹으려 들어 집안사람들을 웃겼다고 말하다 박씨는 또 울음을 터뜨렸다.
수사과정에서 다정했던 이웃과도 서먹서먹한 사이가 되어버린 데다 맏아들 명재군 마저 소꿉친구를 잃고 외톨박이가 돼버리자 승재네는 9월 안으로 5년 동안 살아온 갈현동을 떠나 이사를 하기로 했다.
박씨는『서조자 여인 등 많은 이웃사람들이 수사과정에서 엉뚱한 고초를 겪고 있는데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하고『엄청난 슬픔을 참아야하는 어미의 입장을 이해해달라』고 이웃주민들에게 전했다. <김종원·김원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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