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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실의 계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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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 한달 동안에 소지품을 잃은 사람들이 평소보다 70%나 늘어났다 한다. 여자는 목숨다음으로 아깝다는 「핸드백」을 잃고, 남자는 목숨만큼이나 중요한 주민등록증을 잃고, 외국인 관광객은 여권을 잃기가 일쑤라는 것이다.
모두가 무더위 탓이다. 요새처럼 매일 같이 30도가 넘는 무더위가 계속되는 속에서는 사람들은 제 정신이 아니다.
남 「유럽」제국을 비롯하여 더운 곳에 사는 사람들은 하루의 일과 중에 「시에스터」 (오수)라는 관습을 마련하는 생활의 지혜를 가지고 있다.
한창 더운 낮에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거리에 나오는 손님도 없으니 장사도 될리 없다. 낮잠이나 자는 것이 상책일 수밖에 없다.
보통 때에도 사람의 능률은 오전에 오르고 오후에는 현저하게 떨어진다. 오전 중에도 능률을 한결같이 지속시키지는 못한다. 이래서 미국의 합리주의는 「코피·브레이크」라는 숨돌리는 시간을 사이 사이에 마련하고 있다.
어느 나라나 유실물이 생기는 「패턴」은 비슷하다. 유실물이 많은 것도 대개 화요일이다. 일하기 시작한 월요일의 긴장이 살짝 풀리는 탓일까. 그러고 보면 일하는 마지막 날인 금요일과 노는 날인 일요일이 그 다음으로 유실물이 많은 까닭도 짐작할만하다.
시간도 대개 비슷하다. 봄과 여름을 제외하고는 「러쉬아워」때 제일 많이 물건들을 잃는다.
시간에 쫓기면서 만원 「버스」에 탈 때 사람들은 자연 소지품에 신경을 쓸 사이가 없다.
여자보다도 남자가 월등하게 물건을 잘 잃는다. 짐작할 만도 하다. 짓궂게 보면 여자는 남자 보다 세심하고 인색하다. 아무리 바빠도 잔 물건에 신경을 더 쓴다. 남자의 행동 반경이 여자보다 훨씬 넓고, 또 더 바쁜 탓이라고 풀이할 수도 있다.
연령별로는 20대가 가장 많고 10대가 그 다음으로 많다. 술과 담배로 금이 갔다는 40, 50대에서는 의외로 유실물이 적다. 물욕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는지도 모르겠다.
계절적으로는 봄에 유실물이 가장 많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이 따스한 햇빛에 풀어져서인지 봄에는 몸과 마음이 나른해진다. 「버스」속에서도 곧잘 잠들기가 일쑤다. 자연 물건을 깜빡 자리에 놓고 내리는 수가 많다.
하기야 한평생을 두고 좀처럼 물건을 잃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툭하면 잃는 사람도 있다. 성격 탓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세심한 사람이라도 사고와 주의력을 마비시키는 무더위의 위력을 이겨내기는 힘들다.
그런 무더위가 앞으로도 당분간은 계속되리라 한다. 「바캉스·시즌」도 끝나 가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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