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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암치료, 법으로 막아야 한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이 무슨 망발인가? 말기암 치료, 법으로 막아야 한다고?

이런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아마 머리가 좀 어떻게 된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다.

2014년 3월7일과 8일은 대한 갑상선학회 춘계학술대회가 열리는 날이다.

대한갑상선학회는 2008년 2월에 창립된 후 현재 굉장히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학회인기라.

갑상선과 관련된 모든 것을 연구, 발표, 토론하는 학술의 장이니까 참여하는 회원들의 학문적 배경이 매우 다양한 기라.

내분비 내과, 갑상선내분비외과, 두경부 이비인후과, 핵의학과,병리과, 영상의학과 등등이 그 것이다.

필자는 이 학회에 대하여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다. 초대 회장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갑상선 외과뿐 아니라 다른 과에서 갑상선을 연구하는 교수들이나 의사들을 만나 갑상선학의

최신동향에 대하여 공부도 하고 의견 교환도 할 수 있는 장이 되기 때문이다.

오늘은 학회 첫날이니까 '이번에는 무슨 잼있는 얘기들이 나올까" 기대 하면서 학회장으로 출발하려는 데 마침 조선일보가 배달된다.

버릇대로 펼쳐 보니까 어? "건강검진 갑상선 초음파, 법으로 막아야" 란 제목의 칼럼이 눈에 확 들어 오는기라..

"아, 또 열 받을 일 생겼네.........."

내용인 즉슨 "갑상선 초음파 검사를 받지 않았다면, 이들의 99%는 결절이 있는 줄도 모르고 평생을 살았을 것이다.

이들 중 목에 멍울이 만져져서 수술을 받아도 10년 생존율은 95%가 넘을 것이다. 그러니 괜히 초음파검사해서 멀쩡히 살아 가는 사람을 겁주고 위협하여 암환자로 만드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은 법으로 중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글을 쓴 사람은 고대 안암 병원 종양내과 교수 신00으로 되어 있다. 이 사람이 통계 숫자로 내세운 99%나 95%는 어떤 의학논문에도 없다. 어떤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적어도 대학에 적을 둔 사람이라면 연구결과와 증거를 바탕으로(evidence based) 의견을 피력해야 하지 그냥 자기 기분에 그럴 것이라는 짐작으로 그렇게 한다면 시정잡배나 무엇이 다른가........

그렇지만 일반국민들은 의사, 특히 항암제를 전문하는 대학교수가 그런 말을 하니 무슨 근거가 있겠거니 여길 것이 아닌가.

참 이상도 하지.....

갑상선암을 조기 발견하는데 딴지를 거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갑상선암의 실체를 모르는 타과 사람들이라는 것이라.

간혹은 의학전문 기자도 아닌 일반사회기자도 이에 편승하여 기사를 쓰기도 하고...

이들의 논조는 "우리나라에서 갑상선암이 많은 것은 초기 갑상선암을 많이 발견하기 때문이고

이들 갑상선암은 예후가 좋기 때문에 초기에 치료할 필요가 없다" 는 것이다. 초전 박살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암이 크고 퍼질 때까지 기다려도 된다는 것이다.

대명천지 21세기 과학시대에 이런 어처구니 없는 말을 하다니..... ...갑상선암이 퍼져 불쌍하게 된 환자들을 보고도

이런 무식한 말을 할 수 있을까. 모르면 용감하다고 갑상선암에 대한 지식이 없다보니까 그렇게 용감한지 모르겠다.

30년 넘게 갑상선암을 연구하면서 필자가 얻은 결론은 갑상선암도 다른 암과 마찬가지로 조기진단 조기치료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초전박살이 환자고생, 의사 고생을 덜어주고 비용면에서도 가장 경제적이라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있다. 물론 최근 세계의 연구결과도 필자의 생각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갑상선암은 단기생존율이 워낙 좋다보니까 적어도 10년이상 생존율을 봐야 된다는 것이 갑상선암 학계의 일반적인 생각이지만 2013년 미국 암협회(American Cancer Society)는 5년생존율을 병기 1과 병기2 는 100%, 병기3는 93%, 병기4는 51%라고 발표한 바 있다..

말하자면 병기 3 이 되면 7%, 병기4가 되면 49%가 5년내에 사망한다는 것이다. 암이 진행될수록 사망율이 높아간다는 말이다.

5년이란 세월은 금방이 아니던가. 10년이란 세월도 금방인데.......5년이나 10년만 살고 그만 둘거야?

이걸 보면 갑상선암도 조기발견하여 조기치료를 해야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100% 생존을 추구해야 되지 않은가?

사정이 이럴진데 뭐 초기 갑상선암을 찾기 위한 초음파검사는 법으로 막아야 한다고?

이세상 어느 누가 한 개인의 건강권을 제한할 수 있단 말인가.. 검사를 못했기 때문에 암이 악화되고 난 뒤에 발견되어 한사람의 생명이 위태로워 진다면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왜 자꾸 이런 말도 안되는 주장이 나올까?

췌장암, 폐암, 간암등 예후가 나쁜 중대암을 다루는 의사 입장에서 보면 갑상선암 같은 하찮는 암이 의료보험예산이라는 파이조각에서 많은 부분을 떼어가니 아마도 눈에 가시 같은 존재로 비춰져서 그런지 모르겠다.

또 초음파검사료를 의료보험에서 커버하게 된 후부터는 그 비용이 장난아니게 많아 지게 되니까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또 건강검진에서 초기암이 많이 발견되니까 이를 발견 못하게 막으면 의료보험 예산이 절약되어 중대암 지원에 유리해 질 것이라고 생각되어 그런지도 모르겠다.

오전 학회가 끝나고 점심을 들면서 모두들 어처구니 없는 기사에 기가 차 하면서 이런 엉터리 주장이 먹혀들 수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니까 모두 대비를 해야한다고들 열을 올린다. 다혈질의 필자가 가장 열을 올리고....

평소에 젊잖은 서울 아산병원의 송00교수가 한마디로 정리 한다.

"그러면 췌장암, 간암, 폐암등 중대암의 말기도 치료하지 말라고 법으로 막아라고 하지 뭐.... 아무리 고가의 항암제를 퍼부어도 결국은 사망하니까 말이지..."

그렇다. 경제적 논리로 따진다면 숫자가 많지 않은 이들 중대암에 의료비를 퍼붓는 것 보다 갑상선암과 같은 예후가 좋은 암을 조기에 많이 치료해 주어 오래동안 잘 살게 해 주는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지 않은가.

갑상선암 환자도 의료보험료를 부담하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던가. 왜 조기발견하여 완치의 길로 가려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가?

사람의 생명은 누구에게나 고귀한 것이다.

암치료의 원칙은 중대암이든 갑상선암이든 그 어떤 종류를 막론하고 조기진단 조기치료가 아닌가?

사람 생명을 구하는 일을 법으로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제 정신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제 정신 가진 필자는 생각한다.

"말기암 치료, 법으로 막아야 한다고? 절대 그럴 수는 없다.

비록 희망의 불빛이 약한 말기암이라도 생명을 살리려고 하는 최선의 노력은 다 해야 한다.

생명의 최종적인 결정은 의사가 아니라, 법이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 그 어떤 절대자의 몫이니까 말이지.....

☞박정수 교수는...

세브란스병원 외과학 교실 조 교수로 근무하다 미국 양대 암 전문 병원인 MD 앤드슨 암병원과 뉴욕의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갑상선암을 포함한 두경부암에 대한 연수를 받고 1982년 말에 귀국했다. 국내 최초 갑상선암 전문 외과의사로 수많은 연구논문을 발표했고 초대 갑상선학회 회장으로 선출돼 학술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바 있다. 대한두경부종양학회장,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아시아내분비외과학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국내 갑상선암수술을 가장 많이 한 교수로 알려져있다. 현재 퇴직 후에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주당 20여건의 수술을 집도하고 있으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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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교수 기자 sohopeacock@naver.com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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