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임종 전야…「시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냉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동남아의 반공적 국제기구로 창설된 「시토」(동남아조약기구)가 성년 21세로 곧 와해될 운명에 놓여 있다.
화해 시대가 성숙하면서 모든 집단안보체제의 기능이 차차 쇠퇴하고 동남아에 새로운 질서가 형성됨에 따라 회원국들이 「시대 착오적 기구」라며 해체를 들고 나온 것이다. 「시토」는 냉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1954년9월 「존·포스터·덜레스」미 국무장관이 중공과 「인도차이나」를 염두에 두고 창설을 제창, 이른바 「마닐라」조약(동남아 집단 방위조약)으로 발족됐었다.
가맹국은 미국·영국·「프랑스」·호주·「뉴질랜드」·「필리핀」·태국·「파키스탄」 등 8개국.
그러나 「프랑스」는 「시트」활동에 적극 참여하지 않았고 「파키스탄」이 72년에 탈퇴, 지금 실질적인 회원국은 6개국뿐이다.
당초 분쟁의 평화적 해결·집단 방위·경제기술협력 등을 목적으로 한 「마닐라」조약에 따라 창설된 「시토」는 창설 당시와는 달리 이제는 그 존재이유가 퇴색한 것이다.
반공보다는 국가이익을 위해 공산권과의 공존을 기도하고 있는 회원국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태국과 「필리핀」이 얼마 전 「마닐라」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발표한 폐막 성명을 통해 『동남아 지역의 새 현실에 따르기 위해 「시토」는 단계적으로 해체되어야 한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다른 회원국인 미국·영국·호주·「뉴질랜드」도 서슴지 않고 이 같은 성명에 동의한다고 발표했다.
「시토」가 지역기구이기 때문에 동남아 회원국이 탈퇴하고 나면 존립의 근거가 없어진다.
「파키스탄」은 인도와의 전쟁 때 「시토」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탈퇴해 버렸었다.
태국과 「필리핀」의 국내외 사정은 반공적 입장에만 머무를 수 없게 됐다.
국내의 반란·파괴 활동 등 위기를 대 중공·인지 선린책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변질된 기구에서 탈피하자는 속셈인 것이다.
또 「마르코스」 「필리핀」대통령이나 「쿠크리트·프라모지」태국수상이 밝힌 바와 같이 경제·문화 관계라면 이 목적에 가장 합당한 「아세안」(동남아 국가연합)이 주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방콕」에 본부를 둔 「시토」는 몇 년 전부터 경제, 기술협력에만 치중해 왔는데 「인도차이나」사태와 회원국의 대 중공 접근 등으로 수명이 재촉된 것이다. <김경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