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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탄 흔적 씻고 … 다시 일으키는 양반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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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칠곡 매원마을 해은고택 사랑채에 주민들이 모여 있다. 매원마을은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조선시대 영남지역 3대 반촌(班村·양반마을)으로 불린다. [프리랜서 공정식]

경북 칠곡군 왜관읍 매원(梅院)마을. 북대구IC에서 자동차로 20분이면 닿을 수 있는 지형이 매화를 닮은 동네다.

 10일 찾은 매원마을에는 ‘공사’의 흔적이 곳곳에 보였다. 현대식 개발이 아닌 고색창연한 과거로의 복원이다. 듬성듬성 서 있는 40여 채 고택은 양반마을의 옛 영화를 짐작하게 한다. 새 기와가 얹힌 산뜻한 토담과 복원 중인 서당 등이 눈에 띈다. 고증을 통해서다. 마을 입구에는 겉모습만 한옥인 현대식 기와집도 마지막 공사가 한창이다.

 이 마을에서 고택이 비교적 잘 보존된 지경당을 지켜 온 이수욱(68)씨가 내력을 설명했다.

 광주(廣州) 이씨 집성촌인 매원마을은 한때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영남의 3대 반촌으로 불렸다고 한다. 조선 중기 문신 석담 이윤우(1569∼1634)가 터를 잡은 이후 일제강점기까지 기와집 등 한옥만 400채 가까웠다는 것이다. 마을은 규모도 컸지만 인물도 어디에 뒤지지 않았다. 한 마을에서 사헌부 대사헌 등 과거 급제자만 26명이 나왔다. 최근 들어서는 서울대 총장을 지낸 이수성 전 국무총리와 이상옥 전 외무부 장관이 이 마을 후손이다.

 400년 역사의 매원마을은 6·25를 만나면서 재앙에 맞닥뜨린다. 파죽지세로 남하하던 북한 인민군은 낙동강에서 일전일퇴를 거듭했다. 왜관에 진격한 인민군은 공교롭게도 매원마을을 근거지로 삼아 종택에 아예 사령부를 설치했다. 지경당은 인민군 야전병원이 됐다. 매원마을이 처절했던 낙동강전투의 한복판으로 빨려든 것이다. 연합군은 인민군 사령부를 향해 폭격을 거듭했다. 종택과 주변 고택은 이곳저곳 부서지고 불에 탔다.

 86칸이었다는 종택은 사랑채의 주춧돌만 남아 있었다. 종부 이명숙(73)씨는 “선조의 도움인지 전란 중에도 사당은 용케 남아 전한다”고 말했다. 현재 남아 있는 매원마을의 40여 채 고택·서당 등도 그래서 곳곳에 총탄 흔적을 안고 있다.

 칠곡군은 선비문화가 서린 매원마을을 체험형 전통한옥마을로 정비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앞으로 10년 동안 사업비 185억원을 들여 고택을 복원하고, 전선 지중화와 아스팔트를 흙길로 바꾸는 사업 등을 할 계획이다. 복원의 기준은 6·25 이전이다. 나아가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개별 고택을 하나씩 문화재로 평가받은 뒤 장차 마을 전체를 ‘민속마을’(중요민속자료)로 지정 받는 것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미 학술조사도 마쳤다. 해은고택과 지경당·감호당 3곳은 최근 도 지정문화재가 됐다.

 매원마을에는 지난 5일 근사한 한옥 한 채가 준공됐다. 주민들이 마을 앞 논에 연을 심어 소득을 창출하고 마을을 찾는 관광객이 연밥·연차 등을 만들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또 올해부터 문화재청이 지원하는 세시풍속체험잔치 마을로도 선정돼 이번 단오부터 전래 풍속을 재현할 예정이다.

 매원마을은 접근성이 뛰어난 데다 개발 바람이 불면서 최근 들어 땅값도 크게 올랐다. 3∼4년 전 25만원(3.3㎡) 하던 땅은 지금은 60만원 정도에 매매된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민속마을 추진이 알려지면서 외지에서 들어온 주민들은 반대 목소리도 내고 있다. 

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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