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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일본이란 무엇인가|신상초-<경희대교수·정치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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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반일감정 건드리는 오만>
7윌23일∼24일 한·일 외상회담이 열린 것을 계기로「한·일 관계의 마찰」은 해소되고 오는 9월에 각료회담이 열리는 등「완전정상화」단계에 접어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 동안의 교섭경위는 자세히 알려진바 없지만 아마도 김대중씨 사건과 문세광사건에 관한 구술서를 계기로 관계호전을 촉구하게 된 것이 아닌가고 추측된다.
65년 국교정상화 후 달콤한 밀월여행을 지속해오던 한·일 관계는 김대중씨 사건과 8·15저격사건의 발생으로 인해 서먹서먹해졌다. 이러한 소원의 직접적인 원인은 전기 두 사건에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65년 양국관계를 타결지음에 있어서 지난날의 가해자-피해자의 관계를 깨끗이 청산치 않고 국교를 개시한데다 가 일본국 및 일본인이 또 다시 지배자연한 자세로 오만불손하게 행동하여 우리민족의 원색적인 반일감정을 자극했다는데 있다.
이제 양국관계는 다시「완전정상화」단계에 접어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완전정상화」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그 의매는 반드시 구체 명확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바람직스러운 관계정상화는 무엇보다도 양국과 양 국민이 서로들 상대를 명백히 외국 및 외국인으로서 인식하고 접촉하고 교류해 나가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동등한 외국으로 인식해야>
한·일 양국은 각각 독립주권국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근 40년이나 한국을 정복하고 통치했던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일인가운데는 한국을 계속 구 식민지의 연속으로 생각하거나 혹은 일종의 부채감 때문에 한국을 특별 취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 적지 않고, 또 한인가운데는 지리적·문화적 친근감이나 혹은 구원 내지「콤플렉스」때문에 일본을 다른 외국과 같이 생각지 않는 경향이 있다. 약 7∼8년 동안 지속되던 밀월여행이 쉽게 파탄된 배경상 요인은 바로 여기 있는 것이다. 따라서 두 나라가 선린이 되어 진정으로 우호친선해지고 싶거든 서로를 상대를 완전히 외국 및 외국인으로 대해 나가는 의식부터 배양해 나아가야 한다.
일인가운데는「부산-하관동시적기론」(부산에 적기가 나부끼게 되면 하관에도 적기가 나부끼게 된다는 세)이나「일의 대수 순망 치한론」(좁은 해협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기 때문에 한국이 망하면 일본도 무사하지 않다는 세)을 내세워 가지고 일본이 후견 국으로 한국을 적극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공산침략의 위협에 떨고있는 한국의 안전을 그처럼 생각해 준다니 고맙게 생각될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일체의식논의 조작에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새로운 지배욕이 도사라고 앉아있는 것이므로 경계를 게을리 할 수 없다.

<타산 없는「경협」바람직>
오늘의 일본은 군사적으로 한국방위를 도와줄 수 있는 처지에 놓여있지도 않거니와 선령 그런 처지에 놓여있다 하더라도 일본의 무력을 빌어 국가안전을 도모해 나가겠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민족적인 긍지가 용납치 않는다. 우리는 오늘의 불행을 팔아 가지고 이웃의 동정을 사며 지난날의 가해자를 끌어들여 상전으로 모셔 국가의 안전을 도모하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어리석은 국민이 되어서는 안 된다.
19세기말부터 약 50년 지속된 일본의 대한침략지배는「일의 대수」 「동조 동근」 「동양의 영원한 평화」를 구실로 삼아 왔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이 상기할 필요가 없다. 사춘엽색 관광을 위해 한국을 드나드는 수많은 일인만 보아도 구토가 난다.
그 일인들이 주로「리프·서비스」를 가지고 한국안보에 협력하겠다고 한다해서 우리가 어떻게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일본이 한국을 다소라도 도와줄 생각을 갖고있는 것이라고 하면 그것은 주로 경제분야로 국한되어야한다. 그 소위「경협」이라는 것도 차관이나 투자를 빙자해서 국제고리대금업자로서 달콤한 국물이나 빨아가겠다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 한국경제의 발전과 한국민의 수지향상에 기여하는 진정한 의미의 협력이어야 한다.

<의존심 버리는 것이 현명>
공간적으로 인접해 있다는 것을 선린우호를 촉구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부화·반목·적대를 조성하는 경우가 많다. 영국과 애란, 독일과「프랑스」,「이스라엘」과「아랍」, 미국과「멕시코」, 소련과 중공의 관계가 그 전형적인 유형이다. 한·일 관계 역시 국제정세 변화여하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는 이 유형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것은 가리려야 가릴 수 없는 엄연한 역사적인 사보이다.
국제권력정치에 있어서 영원한 것은 오직 국익뿐 국가간의 변의상 이합 집산은 포말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은 이웃나라이고 경제대국이니 믿고 의존해도 좋다는 어리석은 생각은 숫제 버리고 사는 것이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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