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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의 저속심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귀에 익은 대중가요 가운데서 요즘 갑자기 들을 수 없게 된 것이 적지 않다. 6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가 88곡의 노래를 방송 및 판매금지조치 한 때이다.
이장희의 『그건 너』 『한잔의 추억』, 신중현의『미인』등「히트」곡도 금지곡에 포함되었다. 일세를 풍미하던 대중의 노래가 하루아침에 심의기준에 저촉된 노래가 된 것이다.
「예륜」은 최근 문공부의「공연활동 정화방침」에 따라 대중가요의 재심을 시작, 이 같이 결정한 것이다.
심의기준은 대체로 국가안보와 국민총화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것, 외내풍조의 무분별한 도입과 모방, 패북·자학·비탄적 작품, 선정·퇴폐적인 것 등을 규제대상으로 했다고 한다. 흘러간 노래, 유행하는 가요를 현 실정에 비추어 재심의 하여 개념적으로 저속·퇴폐의 한계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심의의 결과는 그렇게 석연한 것만은 아니다. 일부 작곡가들이 결정에 맞서 이 심의강화 와 재심 등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있는 것이 그 증거라 하겠다.
이들 작곡가들은 작사자·작곡자·가수 등 3자에 의해 완성되는 노래를 그중 어느 한사람의 잘못으로 금지시키는 것은 가혹하다고 주장한다. 시중에 무질서하게 나도는 갖가지 불법음반들이 규제되지 않는 현실에서 법질서를 지켜온 업자들만 소급적으로 심한 규제를 당한다는 불만도 있다. 또 이미 제작·출판된 것을 판매 규제하는 것은 음반산업을 더욱 침체시키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이런 가요계의 주장은 전혀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더우기 『이번 금지곡 가운데는 곡의 퇴폐, 혹은 저속이 이유가 됐던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는 한 작곡가의 진술로 보더라도 곡 자체의 결함보다도 「그 밖의 사정」에 의해 가요가 금지곡으로 결정된다면 사태는 훨씬 심각한 것이라고 하겠다.
공서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자유롭게 쓰여지고 노래 불려져야할 대중가요가 그야말로 사회의 통념과 상식을 외면한 규제의 창살 속에서 질식해 버린다면 그것은 비단 가요의 작사자·작곡가·가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불행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 우리의 대중가요가 「예륜」의 사전심의, 각 방송국의 자체심의, 방송윤리심의위원회의 심의, 그리고 「예륜」의 재심 등 4단계심의를 거치면서 잡음을 일으키고 있는 사태는 그 가요자체 말고서도 분명히 또 어딘가에 잘못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말 그대로의 엉터리·저질·퇴폐가요를 규제하는 것은 사회를 위해서 절실히 필요한 것으로 우리도 원칙적인 찬성을 표명하는데 아무런 이의가 없다.
그러나 대중이 사랑하고, 많은 사람이 즐겨 부르는「대중의 노래」가 반드시 이 같은 기준이 모호한 4단계의 심의로 「좋은 노래」가 될는지는 의문일 수밖에 없다. 특히 「예륜」 의 사전심의 끝에 널리 불려진 노래를 같은 기구가 다시 방송·판매금지 하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 의심스럽기도 하다.
어떻든 너무 잡다한 심의기구가 지나치게 가혹한 규제를 능사로 하는 것은「대중가요」분야에서도 역시 바람직한 것은 못된다는 것이 우리의 견해다.
대중가요심의의 일원화와 저속·퇴폐 등에 관한 보다 합리적인 기준설정이 지금부터라도 다시 모색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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