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스타일」의 백악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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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제널드·포드」 미대롱령은 대통령취임 때부터 백악관울 딴판으로 바꿔보기로 작정한 것 같다. 꼭 닫혀있던 백악관의 문들이 활짝 열리고, 만나기 어렵던 대통령과 보좌관들도 만나기가 수월해졌다. 11개월 전 「포드」는 대통령직을 이어받으면서 자신의 「스타일」은 솔직성과 개방성이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는 자신의 말을 충실히 지킨 셈이다. 「인디언」 추장·추기경·양모업자·가축업자·노동지도자·사업가·흑인·학생 등 4천여명이 줄을 이어 대통령의 집무실을 거쳐갔다. 「포드」의 「스타일」은 「닉슨」의 「황제적 대통령」에서 딱딱한 격식을 빼버린 것이다. 대통령전속사진사 「데이비드·케너리」씨는 색이 바랜 청바지를 입고 백악관구내를 자유롭게 다니며 일을 한다.
「포드」대통령의 백악관은 말하자면 의회「스타일」로 운영되고있다. 「닉슨」은 참모들이 그에게 제출한 몇 가지 안을 집무실에서 혼자 검토해서 결정하는데 비해 「포드」 대통령은 일단의 조언자들과 함께 문제를 검토하기룰 좋아한다.
깊이 분석하는 성질이 아닌 그로서는 「브리핑」서류에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결론을 낼 방법은 없다고 믿는 것 같다.
대통령에 취임할 당시 「포드」대통령은 백악관의 기구와 방법이 「닉슨」에 대한 불신의 이유가 되었음을 아주 잘 알고있었다.

<다시 채택된 수석참모제>
그는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4명의 잠정 「그룹」을 구성했다.
이 4인「그룹」은 세 가지를 권고했다. 첫째 「닉슨」 재임시와 같은 고도로 중앙집중적인 백악관 「스탭」 제도를 없앨 것, 둘째 백악관의 많은 임무와 권력을 정부의 각부처에 이양해줄 것, 세쌔 「닉슨」수석보좌관 「홀드먼」처럼 전권을 쥔 한 사람의 수석보좌관 따위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 등이었다.
잠시동안 백악관의 업무는 엉망진창이었다. 「뉴스」가 새어나가면 반대해명이 뒤를 따르곤했다. 「헤이그」 장군과 「하트먼」이 신문에서 털어 내놓고 싸움을 벌였다.
「럼즈펄드」씨가 대통령조정관으로 발탁되자 이런 방만스러운 조직은 곧 끝장이 났다.
그는 「닉슨」의 수석보좌관 「홀드먼」식의 기구를 다시 만들었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가는 정보를 제한한 「홀드먼」식과는 달리 2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대통령과 직접 면담을 할 수 있게 했다. 「럼즈펄드」는 대통령의 수문장격이라고 할까, 대통령과의 모든 접촉은 반드시 그를 통하게 되어있다. 느릿느릿한 그의 「보스」와는 전연 달리 그는 깐깐한 성격에 때로는 차고 무뚝뚝하기도 하다. 백악관의 인사와 예산을 한 손에 주무르는 그는 보좌관 중에서 「닉슨」 시대의 망령들을 모두 내쫓아버렸다. 「포드」 대통령이 너무 공개적이기 때문에 그 옆에 이런 사람이 더욱 필요한지 모른다.

<보좌관 줄이고 토론 즐겨>
이제 43세 밖에 안된 「럼즈필드」는 같이 의원생활을 하던 62년부터 「포드」를 알게 됐고 65년 「포드」를 원내총무로 민 공화당 개혁파의 한사람이다.
그의 지론은 대통령이 모르는게 없게 해야된다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보좌관들과 행정부와의 정보교환이 원활해야한다는 것. 「닉슨」 시대에는 대통령에게 가는 보고서를 각료들도 마음대로 볼 수 없었는데 비해 「럼즈펄드」는 모든 보고서를 직접 다 읽고 또 알 필요가 있는 모든 사람에게도 보게 하고있다.
새로운 체제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접근이 쉽게 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강점이면서도 약점이 되기 쉽게 되었다. 즉 느슨한 체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사적으로 대통령을 만나 이러쿵 저러쿵 제각기 충고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자 수만도 13명이나 되는데 이중에는 연설 속에 농담을 여기저기 섞어 넣는 일을 맡은 과거의 「코미디·스크립터」도 들어 있다. 이들을 포함해서 백악관의 공보담당관은 「론·네센」대변인 이하 43명이 있다. 이들 대부분은 백악관을 출입하는 1천5백명의 말썽 많은 기자들의 시중을 드는 것이 주업무다.
백악관의 권력은 「닉슨」시대에 절정에 달했었다. 이때 백악관은 모든 정부부처를 철저히 관장하고 있었는데 당시의 백악관 참모였던 「존·엘리크먼」은 『대통령이 「뛰어라!」하면 각료들은 「얼마만큼 높이 뛸까요?」라는 정도의 반문 밖에 못했다』고 말한바 있다.

<우발적 실수 문책 안해>
그러나 「포드」가 들어서면서 그런 추세는 역전되었다. 뿐만 아니라 「닉슨」 시대에 백악관직원들이 누리던 특권들을 박탈당했다. 정부보조로 터무니 없이 싼값으로 제공되던 구내식당의 음식값은 보조비 지급 중단으로 두 배로 올라 외부 음식과 같아졌고 과거에 공짜로 제공되던 포도주와 「마티니」 등 술은 금지되었다.
대통령의 측근으로서의 세력을 휘두를 수 있는 소위 「특별보좌관」수가 크게 줄었으며 고위관리들의 부인에게 제공되어온 운전사가 달린 공용승용차 제도도 폐지되었다.
「포드」의 일과는 상오 7시40분에 있는 「키신저」 국무장관의 보좌관 「스코크로프트」장군의 정보 「브리핑」으로 시작된다.
그는 하루 평균 12 내지 15명의 외부 인사들과 면담을 갖는데 반드시 보좌관을 배석시켰던 「닉슨」과는 달리 「포드」는 자주 단독으로 이들 인사들을 맞는다.
이렇게 되니 「닉슨」 때 말썽 많았던 백악관의 수문장격의 「소수 실력자」란 존재하기 어렵게 되었다.
「포드」가 들어선 이후의 백악관의 특징 중의 하나는 실수를 범하더라도 당장 날벼락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분위기다. 「포드」는 퍽 안정된 성격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가끔 있을 수 있는 우발적 실수로 사람을 갈아치우지 않기 때문이다. <미 「포춘」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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