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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원성지순례기 24 (제자·이은상) 노산 이은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나는 마지막으로 불타의 제4성지인 「쿠시나가라」(구시나게나)를 향하여 발길을 돌렸다. 그곳이 불타가 마지막 열반하신 곳이다.
다만 그곳의 방향이 제3성지인 「사르나트」(녹야원)와는 멀리 떨어져 있을뿐더러, 내 여행의 사정상, 도로「네팔」의 「카트만두」로 돌아왔다가, 「바이라와」를 거쳐 육로로 다시 국경을 넘을 수 밖에 없었다. 「바이라와」에서 자동차로 20분가량 달리면 「네팔」과 인도의 국경이 된다. 길은 곧은 한길로 계속해서 달리는 길인데, 한길 중간에 기차건널목 막대 같은 것을 가로 걸쳐 놓고, 그것을 국경이라고 일컫는 것이었다.
그러나 말만 국경이지 사람과 수레가 아무 거리낌없이 왔다갔다 하는걸 보면 국경같지도 않은데, 다만 제3국의 외국인들만은 검문을 받아야하는 것이었다.
더우기 「네팔」사람이나 인도사람이나 거의가 다 가난하고 무식한 대중들이라, 그들에게 「패스포트」나 「비자」가 있을래야 있을 도리가 없고, 그러기 때문에 건널목 국경 막대를 저희들 손으로 들어올리고 왔다갔다하는 그들은 외모로 보아서는 어느쪽 사람인지조차 분간할 길이 없었다.
나는 인도쪽 사무관에게서 여행권 검열을 받았다. 그가 사무보는 집은 길가 대폿집같은 헛간이요, 책상은 국민학교 아이들 책상같은 것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가 무슨 「노트북」 같은데다 무엇인가를 적고 있는 동안 나는 한길로 나와 건널목 국경막대를 쥐어보는 순간 우리나라 휴전선 철조망읕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길 복판에 건널목처럼
막대 하나 걸쳐놓고
허허 우습다
이것을 국경이라네
차라리 터놓게 그려
말로만해도 되잖으리
나라와 나라 사이
국경이란 것도 이런건데
우린 왜 제나라 땅을
두 동강 내고 철조망 치고!
인도땅 국경막대를
만져보는 이 심정!
나는 검문을 마치고 남쪽을 향하여 차를 달렸다. 끝없는 들판길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노우탄와」라는 큰 마을을 지났다. 뜨거운 햇볕만이 내리쬐는 들판길이었다.
이곳은 7, 8월, 비 올적에 파종을 하고 겨울에 가서 추수를 하기 때문에 가을철에는 들판에 곡식이 익어 황금물결 치는 것을 구경할 수 있겠지마는, 봄·여름철에는 먼지만 펄펄 나는 빈 들판이라 거칠고 쓸쓸하기 짝이 없었다. 이따금 들가에 집들이 있긴하나, 거의 토굴과 같고 먼 길에 행인조차 드문데, 간혹 병든 사람이 가마위에 실려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얼마쯤 가서 「파렌다」라는 꽤 큰 마을을 만나는데, 그곳은 쌀 시장이라, 많은 사람들이 우글거렸고 또 시장거리에는 고구마와 감자와 양파들이 있어 낯익은 물건들이라 친구 만난 듯 반갑기도 했다.
다시 끝없는 들판길을 달렸다. 더운 바람이 얼굴 위를 퍼붓는 것이었다. 이 근처에는 「바나나」밭이 많았다. 인도에서는 「바나나」를 「켈라」라 하는데 값은 여덟개에 1「루피」를 받는 것이었다. 우리돈으로 65원셈이었다.
이윽고 「고라크푸르」란 큰 도시에 이르렀다. 그곳은 「랍티」강 기슭에 자리잡은 1천4백여년의 오랜 역사를 지닌 옛 도성이요, 오늘도 철도가 교차되는 곳이라, 꽤 번성한 상업도시로서, 인구도 18만명이나 사는 곳이었다.
이 거리를 지나가다가 큰 코끼리를 타고 장보러 다니는 사람들을 보았다. 인도 풍경의 하나로, 익히 듣던 이야기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무척 흥미롭기도 했다.
인도에서는 코끼리가 많기도 할뿐더러, 옛날 오천축 국왕들이 모두 다 코끼리를 높이 받들기 때문에, 인도를 「상존국」이라 일컫는다고 기귀전에 적혀 있음을 보거니와, 그보다도 불교와 코끼리와의 인연은 여간 깊은 것이 아니다.
코끼리는 본시 큰 힘을 가졌으면서도 그 성질이 유순하기 때문에, 마치 보살의 착하고 부드러우면서 큰 위력을 가진 것에 비겨왔고, 그래서 서응본기경이나 인과경등에 보살이 육아백상을 타고 마야부인의 꿈에 태속으로 들어와, 마침내 불타의 탄생을 보았다는 이야기가 적혀있고 그래서 불타를 상왕에 비기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코끼리를 범어로 「가야」라하기 때문에, 우리 가야산을 상두산이라고도 적었으며, 또 묘향산을 비롯하여 남북 명산에 상왕봉이란 이름으로 부르는 곳이 여러군데 있는 것을 보면, 그만큼 우리나라에 불교의 영향이 얼마나 컸던줄을 짐작하기에 족하다.
뿐만 아니라 코끼리는 평화의 상징으로도 일컬어 왔던 것이니, 잡보장경에 옛날 인도의 고대국가들인 가시국과 비제혜국사이에 흰코끼리가 전쟁하지 말자는 평화의 사절로 심부름 다닌 이야기가 실려 있거니와 오늘 우리 형편에도 평화의 사절인 흰코끼리가 아쉽다.
나는 혼자 빙그레 웃으며 코끼리의 몸뚱이를 두어번 두들겨 주고 지나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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