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공은 텅 빈 상태? 천만의 말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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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거울 사이에 존재하는 진공에너지의 3차원 분포도. 마치 기타 줄이 진동하는 것과 비슷한 높낮이 패턴을 확인할 수 있다.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진공(眞空)은 흔히 아무것도 없는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1933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영국의 물리학자 폴 디락은 전혀 다른 이론을 제시했다. 진공이 실제로 텅 빈 것이 아니라 아주 약한 ‘영점 에너지(zero-point energy)’로 채워져 있고 이 에너지에 의해 입자와 반(反)입자가 끊임없이 만들어졌다 사라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워낙 에너지가 작고 입자의 생성·소멸 속도가 빨라 관측하지 못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다양한 간접 실험을 통해 확인됐지만 진공에너지의 실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했다. 측정기술의 한계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국 연구진이 이 같은 기록을 깼다. 서울대 안경원(물리천문학부) 교수 연구팀은 10일 나노m(1nm=10억분의 1m) 크기의 격자와 바륨(Ba) 원자를 이용해 진공에너지의 3차원 공간분포를 형상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7일 네이처(Nature) 커뮤니케이션스 온라인판에 게재된 논문을 통해서다.

 물리학자 디락의 기존 이론에 따르면 외부 자극을 받아 높은 에너지를 가진 원자는 진공에너지가 만들어 내는 전자기장을 만나면 빛(에너지)을 방출하며 낮은 에너지 상태로 돌아간다. 앞선 연구자들은 단순히 이 빛을 관측해 진공에너지의 존재를 확인하는 데 그쳤다.

 반면 서울대 연구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빛이 나오는 위치를 일일이 확인하는 방법으로 진공에너지의 분포를 역추적했다. 직경 170nm짜리 구멍을 가로 72개, 세로 16개씩 뚫은 격자를 만든 뒤, 바륨을 가열해 만든 기체를 통과시켰다. 나노격자로 바륨 원자를 걸러 위치를 확인해 가며 광자(光子·빛 알갱이) 방출을 계속 추적한 것이다.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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