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 수상을 조종하는 아들 「산자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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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인도가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는 요즘 가장 측근의 각료들조차 불신하고 있는 「인디라·간디」 인도수상은 그녀의 말썽꾸러기 아들 「산자이」에게 중요한 정치결정의 도움을 구하고 있다. 올해 29세의 「산자이」는 「간디」여사의 공적 가운데 누구를 체포해야 되는가에 대해 조언을 했었다.
그 이후 「간디」 여사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독재권을 장악했으며 「산자이」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권력을 장악하는 방향으로 「간디」여사를 이끌어가고 있다.
「산자이」는 정부직위 따위를 갖고 있지 않지만 「간디」 여사의 비상회의에 참석한다. 그는 수상실에서 활동하면서 각료들과 고위층 공무원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산자이」는 「간디」 여사가 부정선거 행위로 유죄판결을 받고 6년 동안 공직활동을 금지 당한 후 그의 어머니 곁으로 달려왔다.
「간디」 여사는 법원의 판결직후 집으로 갔다. 「산자이」는 널찍한 잔디밭 위를 달려나와 그녀를 맞았으며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그는 어머니를 끌어안고 어린애처럼 울었다는 것이다.
「간디」수상·「산자이」 비판자들이나 「간디」일가와 가까운 소식통에 의하면 지난 몇 년 동안 「산자이」는 백만장자가 되었는데 그가 그럴만한 무엇을 한게 아니라 내가 아무개라고 내세움으로써 치부했다고 한다. 비판자들은 어머니의 힘이 없었더라면 그가 설계한 「마루티」라 불리는 소형 자동차 공장 설립인가를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비난한다.
「산자이」 자신의 투자액은 단돈 1천5백「달러」였다고 하며 「간디」의 아들행세를 하지 않았다면 대공장을 세우는데 필요한 1천만「달러」를 끌어 모을 수도 없었을 것이며 또 그 공장을 세우는데 필요한 수천t의 강철을 할당받거나 입지조건이 뛰어난 2백97「에이커」의 공장대지를 헐값으로 사들이지도 못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많은 인도인들이 품어온 의문은 「간디」같이 현실에 민감한 정치인이 왜 그 자신과 「산자이」에 관한 말썽을 그대로 방임했느냐는 점이다.
이에 대한 해답은 그와 「산자이」 사이의 복잡한 관계, 그리고 작고한 남편 「페로제·간디」와의 결혼 등에서 풀려야 할 것 같다.
「페로제」와 「인디라·간디」는 1942년에 결혼했다. 7년 후 「간디」 여사는 가정을 뛰쳐나와 두 아들 「산자이」와 「라지브」를 데리고 그의 부친인 「네루」수상의 관저로 들어갔다.
남편 「페로제」는 수상관저로 가서 가족과 함께 살기를 원했으나 실현되지 못했고 결혼은 곧 끝장이 났다.
「산자이」는 아버지가 당한 굴욕 때문에 심리적으로 큰 고통을 겪었지만 참아야만 했다. 그는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행한 행동에 대해서는 결코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산자이」는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 항상 오락가락했다. 수개월전 이들 모자와의 만찬에 참석했던 한 친척은 「산자이」가 어머니의 뺨을 여섯 번이나 때리는 모습을 보았다고 전했다.
『「간디」는 아들의 행동에 대해 겁에 질려 있었으며 꼼짝 않고 당하고 있었다』고 현장에 있었던 한 사람이 전했다.
자동차 공장에 관한 「스캔들」이 널리 퍼졌을 때 「간디」는 아들을 옹호했으며 「산자이」야말로 모든 인도 젊은이의 모범이라고 주장했다.
몇 달 전 「산자이」는 친구들이 「꼬마가수」라 부르는 10대 아가씨와 결혼했다. 이 앳된 한 쌍은 광대한 수상관저에서 「간디」와 함께 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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