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시인대회 77년엔 서울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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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제1차 「아시아」시인대회가 지난6월22일 부터5일간 인도 남부동해안「마드라스」에서 개최 되었다. 이 모임은 지난 73년 자유중국대북에서 열렸던 제2회세계시인대★회 참석했던 「아시아」지역시인들이 의견의 일치를 보아 실현된 모임으로서 77년의 제2차대회는 서울에서 열기로 결정했다. 이 모임에 시인 조병화 최원규씨와 함께 한국대표로 참석했던 여류시인 김량식씨는 이 모임에 관한 소식을 다음과 같이 본사에 보내왔다. <편집자주>
「아시아」 전역과 인도각지로부터 2백여명의 시인들이 회의장소인 백색의 웅장한 석조건물「라자지·홀」에 모여 들었다. 참석자 모두가 진지한 마음가짐이었지만 특히 인도의 시인들은 그들 나라의 표면적 빈곤이나 기아로 인한 회장과는 달리 학문과 문학에 대한 깊은 정열을 보여주었다.
지난6월22일 하오6시의 개회식은 그곳 지사인「클라이그너·카루나니디」박사의 개회축사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정치가지만 시·희곡·수필등에서 재능을 보이고 있는 문인이기도하여 『힘 있는 시, 깊이 있는 시,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시로서 인간의 영혼을 정화시켜야 한다』는 그의 개회사는 깊은 감명을 주었다.
개회식에서 한국대표 조병화시인은 축사와 축시를 낭송하여 열렬한 박수를 받았으며 아울러 모윤숙여사(한국현대시인협회회장)의 축전도 낭송되었다.
주최측은 또 필자에게 환영의 뜻으로 향나무를 깎아 만든 화환과 「자스민」흰꽃으로 만든 꽂다발을 목에 걸어 주었는데 그 짙은 향기는 바로 인도의 찬란했던「타미르」문화를 연상시켜 주었다.
대회 이틀째인 23일에는 시낭송「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시는 모두 자기나라 언어로 낭송되어 대부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리드미컬」한 효과가 살아 있어서 듣기 좋았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인도에는 방언이 17종이나 있어 인도인들끼리도 서로 알아듣지 못한다는데 그러한 현상은 시낭송에서드 두드러지계 나타났다는 것이다. 「타미르」「구자라티」「우르두」 「힌디」「뱅갈리」「산스크리트」등 언어의 이름조차 생소한 것이 많았다.
한국대표 역시 우리말로 시를 낭송했는데 듣는 사람들은 비록 알아 듣지는 못하나 신기하고 재미있다는 표정들이었다.
이 대회는 이어 『인도·문학의 「이미지」』 『인도문학평론』『시에의 귀의』등 특별 「심포지엄」, 인도언어에 대한 강연, 종합토론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폐막에 앞서 한국대표단은 77년도의 차기대회를 한국에서 개최할 것을 제의, 만장의 박수갈채로 받아들여져 결정사항으로 선포됐다.
이 대회에 참석하면서 가장 인상에 남았던 인도시인은 이 대회의장으로 추대된 「P·랄」씨(「캘커타」대 영문학교수) 「모니카」부인, 그리고 「바노·스이드」부인등 세 시인이었다. 「랄」교수는 인도최고의 「베스트·셀러」문인 가운데 한 사람인데 그의 작품이 유명한 것처럼 그의 품위있는 강연은 인도학계나 문단에서 늘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1년중 3개월은 미국의 초청교수로 인도문학을 강의하고 있다는 그는 필자와 만나자 『한국은 꼭 가보고 싶은 나라였다』면서 이러한 희망이 하루바삐 실현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모니카」부인은 인도의 전통적인 귀부인을 연상케하는 풍모로 그의 모습에서 위엄이 풍기듯 그의시도 단아한 반면 깊은 무게가 느껴졌다. 그는 영역된 필자의 작품『풀꽃』을 읽어 보더니 자신의 시 『풀』과 또 다른 인도시인의 시『풀』을 보여 주면서 『한국과 인도의 시에는 공통된 시인의 영혼이 발견된다』고 지적해 주었다.
「스이드」부인역시 「모니카」부인 연배의 노시인이지만 나이답지 않게 감상적 낭만이 흘러 넘치는 소녀의 분위기를 풍겼다. 그는 시낭송을 특히 잘하는 시인으로 유명한데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의 시는 대부분 이해하기 쉽고 읽기 쉬운 시였다.
필자와 작별할 때 그는 정말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는 것이었다. 이들 3명의 인도시인은 필자에게는 이번 대회에 참석한 의의를 더욱 깊게해 주었다. <현지송고연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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