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깍두기」의 풍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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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해방 전에 서울에 두 명물 사나이가 있었다. 하나는 주로 탑동공원 속에 살고 있는 바보였다.
그는 어린이들을 위해 그네를 밀어주고 보채는 어린이를 등에 업어주기도 했다. 어린이들의 놀림감이 되면서도 그는 언제나 싱글벙글 웃고만 있었다.
또 하나의 명물은 별명을 깍두기라 했다. 그는 늘 새빨간 옷차림을 하고 거리를 활보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었다.
그가 색맹일거라고 본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정신이상자로 봤다.
남달리 개성이 뚜렷했던 사람이라고 본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어쩌면 깍두기는 일종의 반항아였는지도 모른다. 그에 비기면 바보는 개성을 죽인 원만한 현실순응자였다.
그후 해방이 된 다음에도 바보는 공원주변에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깍두기는 40년대에 이미 자취를 볼 수 없었다.
요새도 깍두기와 같은 생활을 그리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깍두기가 살기는 더욱 힘들어졌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포드」 미대통령은 독립 2백주맞이 「메시지」에서 앞으로는 개인의 독립과 개성의 창달에 힘쓰기를 강조했다.
『현대 세계의 대량 접근 방식은 창조력과 개인성을 장려하고 있다. 이렇게 말한 「포드」는 매우 낙관적이다. 이와 반대로 「발레리」에서 「헉슬리」 「사르트르」에 이르기까지, 서구의 거의 모든 지성은 비관적이다. 곧 현대 문명은 개인을 매몰시켜가며 있다는 것이다.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던 「가블」도 『성숙사회』라는 책에서 정신의 끔찍한 퇴폐를 예견했었다.
그에 의하면 서기 2천년까지에는 사람들의 소득은 4·5배로 늘어난다. 그러나 인간자체는 내면적으로 더욱 메말라 간다. 이와 비례해서 개인의 독립성도 줄어만 간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인간의 정신적 풍요를 누린 시대는 거의 없었다.
잘 길들인 원숭이의 놀이를 한참 보더니 「몽테뉴」는 탄식하기를 『우리가 왜 이렇게도 짐승 중에서 제일 추하고도 비열한 것을 닮았을까』라고 말한 일이 있다.
우리가 더 원숭이를 닮게 됐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원숭이를 닮아가도록 강요하고 있는 힘든 「몽테뉴」가 살던 16세기보다 엄청나게 커져만 가고 있는 것이다. 『대량생산·대량교육이 개인의 표현을 억제하거나 개인의 기회를 제한해서는 안된다.』이렇게 「포드」는 말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못하다.
이리하여 깍두기는 어느 나라에서나 의롭다. 물론 깍두기가 바로 개성의 표현이 되지는 않는다. 누구나 다 깍두기처럼 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다만 깍두기라도 눈총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개방된 풍토가 바람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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