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3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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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2차대전이 끝날 무렵 독일에선 담배 한 갑에 10만「마르크」를 한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일은 만주에서도 볼 수 있었다. 쌀 한 가마를 사려면 돈을 한 마차는 싣고 가야 했다. 모두 거짓말 같은 정말들이다.
해방 후 우리 나라의 물가사를 일별 해도 거짓말 같은 이야기들이 없지 않다. 1946년도엔 물가가 해방당시보다 3백70%나 뛰어 올랐었다. 열흘에 평균 10%씩 오른 셈이다.
그러나 이것은 6·25 동난 무렵에 비교하면 또 아무 것도 아니다. 동난 이듬해인 l951년은 전년에 비해 무려 5백30·5%를 기록했다. 하루가 옛날처럼 물가는 촌각을 다투어 올랐다. 하긴 그때는 값이 따로 없고, 호가가 곧 물가였던 셈이다.
해방 30년 동안 물가가 내린 일은 꼭 한번 있었다. 그야말로 「30년 기록」으로 아직까지 그 영예를 지키고 있다.
1958년, 그 해는 6·5%가 하락했다. 그 후에도 한 두 해는 고작 2·2%정도의 변동밖엔 없었다. 이것은 그 당시 긴축정책을 강행한 결과였다.
70년대에 접어들어 소강상태의 물가는 다시 야생마처럼 뜀박질을 하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추세였다고 는 하지만, 74년도의 물가상승율이 44%나 된 것은 기록적인 일이다. 미·일·영국 등 세계주요 24개국의 평균치가 13% 정도인 것에 비하면 우리의 경우는 가히 세계적인 기록 중 하나가 될 것도 같다.
해방 30년을 통틀어 물가(도매의 경우)는 5천8백배가 인상되었다. 물론 두 차례의 화폐개혁은 있었지만, 그래도 놀라운 상승이다.
이와 같은 사실들은 주부를 위한 한 강연회에서 소개된 것이다. 한편으론 그런 물가들에 견디며, 그래도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 가는 주부들에게 격려의 박수라도 보내주고 싶다. 그나마 우리 주부들은 아직도 위로를 받을 여지도 있다.
최근 일본의 한 경제연구소가 조사한 한·일 두 나라의 실질 소비수준을 보면 우리생활은 그래도 좀 나은 편이다. 일본은 1970년도에 벌써 언필칭 국민소득이 1천「달러」에 육박한다고 뻐겼지만, 과연 실속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그들은 우리의 소득보다 5배가 넘는 생활 수준을 유감없이 누리고 있지는 못했다. 비싼 쌀·비싼 교통비·비싼 옷 등은 오히려 소득을 앗아가 버려 옹색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령 의복 같은 경우, 일본의 7분의1내지 5분의1이면 우리는 사서 입을 수 있다. 그밖에도 가임·가구·의료·교통·교양 등의 부문은 현격하게 우리 쪽의 비용이 싸다. 다만 우리의 소득가운데 식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도 넘는 것은 대조를 이룬다.
오늘날 독일은 기적적 부흥을 이루었지만, 국민은 가죽바지에, 재생휴지를 쓰고있다. 그들은 쓰라린 경험을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과거로부터 언제나 교훈을 찾으며 살아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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