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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조작 윗선 파악에 주력 … 국정원 ‘몸통’으로 몰릴까 민감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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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호 03면

검찰과 국가정보원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을 놓고 정면 충돌하고 있다. 국정원은 공식적으로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검찰이 국정원을 증거조작의 ‘몸통’으로 몰고 갈 가능성에 대해서는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검찰과 국정원의 갈등은 지난해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 이후 두 번째다.

파문 커지는 간첩 증거조작 사건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8일 중앙SUNDAY와의 통화에서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지만 국정원과 대공수사팀이 계획적으로 간첩사건을 조작한 것으로 단정짓거나 선입견을 갖고 수사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언론도 지난 5일 자살을 시도한 김모(61)씨의 유서에 나온 (가짜 서류 제작비 등) 몇몇 말만 갖고 지나치게 앞서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검찰은 국정원이 증거조작을 지시했거나 최소한 이를 사전에 알고 있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7일 진상조사팀을 수사팀으로 확대 전환한 것도 이 같은 혐의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검찰은 증거조작에 관여한 것으로 의심되는 국정원 대공수사팀 직원 4명을 출국금지하고 이른바 ‘윗선’ 파악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대검 관계자는 “수사는 기소를 전제로 하는 것인 만큼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결과를 내놓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국적의 탈북자로 알려진 김씨가 위조한 서류는 중국 싼허(三合) 변방검사참(출입국관리소)의 정황 설명서다. 지난해 2월 간첩 혐의로 기소된 탈북자 출신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34)씨가 중국과 북한을 오간 출입경 기록의 해석 논란에 대한 답변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유씨를 기소하면서 그가 2006년 5월 23~27일 북한에 들어가 어머니 장례를 치른 뒤, 바로 재입북해 6월 10일까지 머물며 북한 보위부에 포섭됐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은 유씨의 출입경기록을 확보해 검찰에 전달했고, 검찰은 유씨의 간첩활동을 증빙할 근거로 이 기록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재판 과정에서 유씨의 변호인 측은 “공소사실에 맞는 기록을 만들기 위해 국정원이 기록을 위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김씨를 통해 확보한 정황 설명서를 근거로 “변호인 측의 출입경 기록이 전산착오일 가능성이 높다”고 반박했지만 이 또한 위조로 판명됐다. 지난달 13일 주한 중국대사관은 이 문서는 물론 중국 허룽(和龍)시 공안국이 발급한 것으로 돼 있는 유씨의 출입경 기록과 이 기록의 발급사실 증명서가 모두 ‘위조된 것’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자살 기도 전 검찰 수사에서 “국정원 대공수사팀 수사관이, 변호인이 제출한 싼허 변방검사참의 공문을 반박할 자료를 구할 것을 지시했고, 제3자를 통해 문건(정황 설명서)을 만들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수사는 크게 두 갈래로 진행될 전망이다. 우선 김씨가 정황 설명서를 위조하는 과정에 국정원 대공수사팀이 얼마나 개입했는지 밝혀내는 것이다. 김씨와 접촉한 국정원 직원은 검찰 조사에서 위조에 관여한 사실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김씨와 국정원 측의 금전거래와 통화내역 등을 분석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두 번째는 앞서 주한 중국대사관이 ‘위조문서’로 확인한 허룽시 공안국 문서 2건의 위조 과정을 밝혀내는 것이다. 검찰은 문서 입수에 관여한 선양(瀋陽) 총영사관의 국정원 파견직원 이모 영사를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이 영사 외에 출입경 기록 입수 과정에 참여한 다른 국정원 직원들이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본격 수사 전환에 따라 국정원 본원에 대한 압수수색 여부도 관심을 모은다. 검찰은 지난해 4월 대선개입 의혹수사를 위해 서울 내곡동 국정원 본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었다. 관련자들이 진술을 거부하거나 비협조적일 경우 검찰은 1년 만에 압수수색 카드를 빼 들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선 지난해 대선개입 의혹수사 당시 윤석열(현 대구고검 검사) 특별수사팀장의 항명사건으로 상처를 입은 검찰에 이번 사건은 자존심 회복의 기회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검찰이 국정원 수사 결과를 토대로 유우성씨 사건의 기소와 공소유지를 맡았던 만큼 어떤 결론을 내놓더라도 자승자박하는 결과가 될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국정원에 의존한 수사의 한계 탓에 검찰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대공수사의 특성상 수사 전반에 걸쳐 국정원에 의존해 온 부작용이 나타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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