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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영화소식] 샤브롤 감독의 '악의 꽃'

중앙일보

입력

'르 보 세르즈(Le beau Serge)'나 '사촌들(Les cousins)', 비교적 최근의 '마담 보바리' 등을 기억하고 있다면 클로드 샤브롤의 새 영화 '악의 꽃(La Fleur du mal)'을 감독의 최고 영화라 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악의 꽃'은 감독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다. 이는 '나이트캡(Nightcap - 원제:Merci pour le chocolat)'이 예상외로 대중적 성공을 얻은 다음, 현재 73살이라는 나이로 자신의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미 깐느, 베를린, 베니스 등 세계의 유수 영화제를 통해 감독적 역량을 인정받은 샤브롤 감독은 이제 평론가보다는 대중을 상대로 자신의 영화를 들이대고 있다.

'악의 꽃'은 한마디로 설명하기 힘든 영화이다. 가족관계의 결함과 정치세계의 비열함을 적절히 섞었다고 단순히 표현하기에는 너무 모호하기만 하다.

이차대전 이후, 한 여인이 독일군을 도왔던 아버지를 살해하지만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 난다. 다시 현대로 돌아와, 막바지에 이른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시장 후보중의 한 명인 안 샤르펭-바세르(나탈리 베이)를 비방하는 익명의 팜플렛이 유포된다. 아버지를 살해하고도 무죄 판결을 받았던 이모 린 샤르펭(수잔느 플롱)과 죽은 남편의 동생과 재결혼한 안 샤르펭-바세르 등 샤르펭-바세르 가문을 비난하는 이 익명의 팜플렛으로 끌로드 샤브롤 감독은 영화 전반에 대한 기본 배경을 설명한다.

그외, 안의 현재 남편인 제라르 바세르(베르나르 르 꼭)는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바람을 피우는 등 온갖 비열한 행동을 자행하고, 안의 딸인 미셸(멜라니 두띠)은 사촌이자 이복형제인 제라르의 아들 프랑수아(베누아 마지멜)와 사랑에 빠진다.

비난 선전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서민아파트를 전전하며 선거운동을 하는 안 샤르펭-바세르와 다른 가족 모두에게 익명의 팜플렛을 실제로 작성한 사람으로 의심받고 있는 제라르 바세르 사이에는, 서로에게 무관심한 만큼 아무런 긴장감도 조성되지 않는다. 제라르 바세르로서는 선거 당일 일찌감치 당선이 확실시되는 안 샤르펭-바세르에게는 관심도 없고 집에 남아있던 의붓딸 미셸에게 "당연히" 관계를 요구하다가 미셸이 내리친 전등에 맞아 죽음을 당하게 된다. 이를 알게된 이모 린이 모든 일을 수습하면서 미셀과 린 사이에는 묘한 유대관계가 형성된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살부"라는 죄가 유전병과 같이 세대를 거쳐 전이되는가를 묻고 있지만, 제라르의 시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웃음을 터트리는 미셀과 린을 통해 현대 사회에 대한 조롱과 냉소를 거침없이 보여준다. 이처럼 반복되는 과거를 통해 히치콕의 영향을 받은 살인, 미스테리, 강박관념에 포크너 식의 (그리고 고다르가 자주 인용했던) "과거는 결코 죽지 않는다. 심지어 그것은 과거가 아니다"라는 명제를 적절히 혼합한 영화가 되었다.

'사촌들'이 1959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받은 이후 '악의 꽃'은 감독으로서는 다섯번째로 베를린 영화제에 출품했다.

박정열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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